대구 중구와 달서구에서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을 계약한 조합원들이 각각 거액의 계약금을 날릴 위기(매일신문 11월 26일‧12월 11일 보도)에 놓인 가운데, 조합원들의 계약금이 앞서 부실 논란이 있었던 신탁사에 입금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행사에선 신탁을 내세워 '안전'을 강조하지만, 실제론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부터 모델하우스를 열고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 5개 동 271가구 규모의 달서구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내 집 마련'을 꿈꾸며 계약한 조합원 25명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설명에 따라 신탁 계좌로 계약금 10억원가량을 입금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신탁사로 보낸 계약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없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신탁 계약은 조합원이 아닌 신탁사와 시행사 간 계약이기에, 조합원들에게 계좌 잔액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 착공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아직 구청에 사업계획 승인조차 받지 못했다.
달서구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조합원 황모(51) 씨는 "국내 굴지의 신탁회사에 돈을 내라고 하길래 믿었고, 처음엔 우리가 낸 돈을 거기서 보관하고 집이 완성될 때까지는 누구도 돈을 못 빼간다고 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업무추진비 등 명목으로 시행사에 돈을 보낼 수 있다고 하더라. 우리는 지금 계약금 잔액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미 다른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에서는 신탁을 믿고 계약금을 보냈다가 피해를 본 사례가 발생했다. 대구 중구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에서는 신혼부부 등 조합원 43명이 16억5천만원을 신탁사 계좌에 입금했으나, 현재 거의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택은 지난 1월 공사를 시작해 중구 남산동 일대에 지상 25층, 222가구 규모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재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중구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에 계약금 5천500만원을 입금한 조합원 A(36)씨는 "신탁사에 정확한 잔액 등을 요청했지만 확인할 권리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신탁이라고 해서 믿었는데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게다가 이 두 곳 주택 조합원들의 돈을 관리하는 신탁사가 달성군 공공임대주택 사기 사건 당시 '신탁 부실' 논란(매일신문 2월 26일 보도)을 빚었던 회사라 조합원들의 우려는 더욱 크다. 달성군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424가구는 분양전환 과정에서 부실 건설사를 믿지 못해 계약금 77억원을 이 신탁사에 맡겼지만, 신탁사는 '잘 관리하겠다'던 약속과 달리 분양과 관련 없는 무역회사 등으로 돈을 빼돌렸다.
현재 이 신탁 잔고에는 76억원이 사라져 1억원만 남은 상황이다. 달성군 주민들은 지난 8월 사문서위조 등으로 신탁사를 고소했으나 무혐의 처분이 나오면서 배임 등 혐의로 추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신탁을 내세워 안전성을 강조하는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이 전국에 많지만, 신탁사에 맡긴 돈이 사라지더라도 '신탁사'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신탁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부여할 뿐 관리 책임은 사업 시행사에 있기 때문이다.
김예림 부동산전문 변호사는 "신탁회사에 돈을 맡기면 절차를 거쳐 사업비가 사용된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법적으로 조합원들이 신탁 계좌 자체를 정보공개 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없고, 일부 시행사에서 용역 대금을 부풀리거나 허위 용역을 해 돈을 빼돌리는 불법 행위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신탁사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오해할 수 있다. 신탁을 이용한 일종의 마케팅"이라며 "계약하는 당사자가 신탁사의 권한과 주택 사기 위험 등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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