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프랑스·아일랜드산 소고기 수입 재개 눈앞…한우 농가 "유럽산 소고기 몰려들라"

이르면 내년 상반기 수입 시작…2000년 광우병에 멈췄던 유럽산 소고기 수입 재개하나

지난 10월 한우의 도시 상주시에서 도내 최고 한우를 선발하는
지난 10월 한우의 도시 상주시에서 도내 최고 한우를 선발하는 '2023년 경북한우경진대회'가 열렸다. 매일신문 DB

"한우는 민족의 자존심입니다. 올해 업황이 유독 나쁜 상황에 유럽산 소고기 수입까지 허용한다니 정부가 우리 농민을 먼저 생각하는 게 맞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광우병에 멈췄던 프랑스·아일랜드산 소고기 수입이 내년 상반기 중 재개될 전망이다. 경북 한우 농가들은 유럽산 빗장이 잇따라 열려 타격을 입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27일 경북 영천에서 한우 150마리를 기르는 농장주 A씨는 "10년 전 미국·호주산 소고기 수입이 시작했을 때 한우값이 10% 이상 하락했다. 호기심에 수입산을 찾던 소비자가 1년 만에 돌아오며 한우값이 회복했지만 그 1년이 천년 같았다"며 "덴마크, 네덜란드산 소고기 수입이 허용됐을 때도 국내 시장 파이를 나눠가지면서 한우 입지가 더욱 줄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때보다 지금 업계 사정이 더욱 어렵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최근 3년 새 한우 공급이 넘치며 값이 내렸다 보니 물가 조절에 힘 보태고자 지난해 사육두수를 30마리나 줄였다. 사료값마저 비싸 소득이 더욱 줄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소고기 시장이 더욱 쪼개지면 농가 소득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고 호소했다.

경북 축산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20일 오후 본회의에서 '프랑스·아일랜드산 소고기 수입위생조건안 심의결과보고서 채택의 건'을 처리했다.

프랑스와 아일랜드 정부는 국내 제출한 수입위생조건안에서 소고기 수입 가능 월령을 도축 당시 30개월령 미만으로 했고, 수입 제외 부위를 넓게 지정해 국회 심의를 통과했다.

두 국가의 수입 제외 부위는 국내법에 따른 '소해면상뇌증(BSE·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 외에도 뇌·눈·머리뼈·척수·척주·내장·분쇄육·소고기가공품 등을 포함해 국제 기준보다 엄격한 것으로 평가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조만간 각국 소고기에 대한 수입위생요건을 고시할 전망이다. 이후 최종 단계인 '수출작업장 승인'까지 이뤄지면 절차가 끝난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수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 소고기를 수출하는 국가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네덜란드, 덴마크, 멕시코, 우루과이, 칠레 등 9개국이다. 유럽산 소고기 상당수는 2000년 소해면상뇌증(광우병·BSE) 발생 이력 탓에 한국에 대한 수입을 멈추고 있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 경우 2019년 각각 처음으로 한국에 수입허용 요청을 해 시장 문을 열었다.

전국한우협회에 따르면 EU의 소고기 생산량은 세계 3위이고, 프랑스와 아일랜드는 EU 국가 중에서도 '수출 강국'으로 꼽힌다. 업계는 이번 계기로 가까운 영국과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 소고기도 국내 시장 문을 잇따라 두드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프랑스와 아일랜드에서 각각 2016년과 2020년 광우병이 발생한 적 있다는 점을 들어 수입 반대 목소리를 낸다.

의성군의 한 한우 농장주는 "최근 사료비가 폭등한 탓에 사육 한우 1마리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씩 손해보고 있다. 유럽산 소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우리는 생존에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축산업계는 여러 축산물 관련 제도를 포괄하는 축산법 뿐만 아니라 특정 품목을 관장하는 품목법으로 '한우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한우 산업 지원책을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기존 축산법을 개정해 필요한 지원을 한다는 입장이다.

최종효 전국한우협회 대구경북도지회장은 "정부가 농민들 어려운 처지를 모를 리 없다. 현 상황을 고려해 수입 허용 시점을 늦췄어야 했다"며 "이번 계기로 유럽산 소고기가 더 많이 들어온다면 언젠가 시장 점유율이 '한우 반, 수입 반'이 될 수도 있다. 한우 경쟁력이 더욱 떨어지기 전에 한우법 제정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