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 미역국도 끓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저 아가 사람이 되겠나. 저래 작아서야. 아빠는 마음이 어땠을까. 아빠가 기다리던 딸은 허약하고 작았다. 그 딸은 인생의 중년이 되었다. 아빠가 가신 그곳, 차례가 되면 나도 가야지. 이 책은 인간의 탄생 그리고 죽음을 마침표 없는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삶은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어짐으로 연결되는 쉼표이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1부에서 요한네스가 태어나고 2부에서 죽는다.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날을 아빠 올라이의 내면 독백으로 묘사한다. 불안, 초조, 기대감.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탄생은 그런가 보다. 요한네스는 어느 날 아침 죽었다. "어쩐지 모든 것이 다르면서 여느 때와 같고,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으면서 동시에 다르다."(58쪽)
몇 년 전에 죽은 친구 페테르를 만나 낚시를 하고 대화를 하고 편지를 보냈던 여인을 만나고, 아내를 만났던 날이 평범하게 나타나고 지나간다. 막내딸 싱네를 길에서 보지만, 싱네를 통과하는 요한네스, 싱네가 느끼는 서늘함, 잠든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죽음,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는 싱네. 죽음에는 살아온 삶도 있다. 허무하지 않다. 친구와 동행하면서 가는 저세상,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133쪽) "사람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언젠가는 우리 모두 차례가 오는걸,"(124쪽) 죽음 앞에 있는 그 여정이 외롭지 않아서 위로가 된다.
이 책의 작가는 욘 포세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이며 문학 전 분야에 걸쳐 활동해 왔다. 1994년 첫 희곡 발표 후 여러 희곡을 내놓았고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이 주로 다루는 것은 가족 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 같은 우리 삶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욘 포세의 문체는 특이하다. '말한다, 생각한다, 그래, 아니' 반복되는 단어가 재미있는 리듬감을 준다. 마침표 없는 것은 금방 익숙해진다. 작가는 언어를 '완전한 내 고유의 방식으로 쓴다'고 했다. 소설의 줄거리도 문체도 단순하다. 책 표지에는 장편소설이라 적혀있지만, 150쪽이다. 짧다. 미니멀하다. 이 작품은 독자가 자신의 내면에 몰입해서 읽게 된다.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 이렇게 따뜻하다면, 나는 이번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여러분도.
나진영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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