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덕에 생긴 현대 달력

로마 건국 당시 달력은 1년이 10달뿐이었다
BC 753년 초대 로물루스왕 제작…1·2월 없이 날짜도 304일이 전부
360, 365.25일 등 변화 거듭하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 개정 거쳐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달력 탄생…한국은 일제 주도 을미개혁 때 채택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달력. 대구 중구 인교동 명신카렌다 인쇄소에서 직원들이 숫자형과 그림 달력의 인쇄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달력. 대구 중구 인교동 명신카렌다 인쇄소에서 직원들이 숫자형과 그림 달력의 인쇄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2023년이 저물어 간다. 인간의 삶은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7가지 정념(情念)으로 가득하다. 한 해 끝자락에 서면 7정(情)으로 빚어진 허물을 돌아보며 새해 마음가짐을 다잡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 달력이 빠질 수 없다. 달력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새물내 물씬 풍기는 달력을 펼쳐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면서 현대 달력의 등장 과정을 따라가 본다.

로마 공화정 시대 달력.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로마 달력. B.C2세기-B.C1세기.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
로마 공화정 시대 달력.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로마 달력. B.C2세기-B.C1세기.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

◆유물로 남은 가장 오래된 로마 달력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보자. 바닷가 피우미치노의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내려 기차를 타면 32분만에 로마 중심지 테르미니역에 내린다. 테르미니역 광장 맞은편에 국립박물관이 자리한다. 3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목욕탕 잔해에 만들었다. 하지만, 주요 유물은 그 왼쪽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에서 탐방객을 맞는다.

로마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 가운데 달력이 눈길을 끈다. 종이 달력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중국에서 종이가 전파되기 전이다. 벽에 검은색과 붉은색 물감으로 썼다.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왼쪽 큰 부분은 달력, 오른쪽 작은 부분은 B.C187년-B.C84년 사이 로마 집정관과 감찰관 같은 주요 공직자 명단이다. 달력이 B.C1세기 공화정 말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지구촌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로마 달력으로 꼽힌다.

◆로마 초기, 10달에서 12달 누마력(음력)

로마 달력의 역사는 B.C753년 로마 건국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로물루스왕이 달력을 선보인다. 박물관측은 로물루스왕이 밤하늘의 달을 기준으로 1년을 10달로 나눴다고 설명한다. 3월(MARTIUS), 4월(APRIPIS), 5월(MAIUS), 6월(IUNIUS), 7월(QUINTILIS), 8월(SEXTILIS), 9월(SEPTEMBER), 10월(OCTOBER), 11월(NOVEMBER), 12월(DECEMBER)이다. 날짜는 304일뿐이었다.

정확하지 못해 많은 혼선이 생기자 로물루스를 계승한 사비니 부족 출신 2대왕 누마 폼필리우스(재위 B.C715-B.C673)가 1월(IANUARIUS)과 2월(FEBRUARIUS)를 추가해 12달로 늘렸다. 그래도 1년이 355일에 그쳐, 3년에 한번씩 윤달을 넣어 태양력과 같은 365일 시스템을 갖췄다. 로마는 B.C 1세기 카이사르때까지 이 때 만든 음력 누마력을 쓰며 팍스로마나를 일궜다.

알렉산드리아. B.C332년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지시해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수도였다.
알렉산드리아. B.C332년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지시해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수도였다.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왕조와 이집트 태양력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도 카이로나 역사고도 룩소르와 달리 무더위도 덜하고 비옥하다. B.C332년 이집트를 차지한 알렉산더의 명령으로 건설된 도시다. 알렉산더는 B.C331년 이집트를 떠나 페르시아제국을 멸망시키고, B.C323년 메소포타미아 역사고도 바빌론에서 숨진다. 알렉산더 부하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이집트 총독으로 와서 B.C305년 알렉산드리아를 수도 삼아 그리스 왕조를 세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B.C306-B.C30)다. 이집트는 그리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구한 역사와 뛰어난 학문, 문화, 예술의 전통을 가졌다. 정교한 달력도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가 일출 직전 동쪽 지평선에 나타나면 나일강 범람이 시작되고, 365일 뒤 반복되는 현상을 관찰로 알아냈다. 1년을 365일로 삼은 근거다. 1달은 30일로 정했다. 달이 29.5일 주기로 반복되는 현상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더의 부하장군으로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 총독으로 갔다가 이집트 왕을 선언하고 이집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웠다. 대영박물관
프톨레마이오스 1세.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더의 부하장군으로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 총독으로 갔다가 이집트 왕을 선언하고 이집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웠다. 대영박물관

30일씩 12달이니 1년은 360일에 그쳤다. 그래서 매년 12달 뒤에 5일을 덧붙였다. 12달에 없는 5일을 공짜로 썼다고 할까.3년에 한번씩 윤달을 넣는 로마의 음력보다 매년 5일만 추가하면 되는 이집트 태양력이 정교하고, 쓰기 편했다.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도 이집트의 태양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가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의 8대손 클레오파트라 7세다. 널리 알려진 그 클레오파트라다.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로마 카이사르에게 이집트 달력 선물

무대를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옮겨보자. 로마 유물 전시실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이 탐방객을 기다린다. 입체적인 조각이나 화려한 그림이 아니어서 다소 아쉽다. 작은 청동 주화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출신답게 머리에 승리를 상징하는 디아뎀을 두른 모습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꿰뚫은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1670년 유고집 『팡세(Pensées)』를 보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좀 낮았다면 지구의 전체 모습이 바뀌었을 것이다". 얼마나 콧대가 높고 미인이었던 걸까?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를 새긴 동전이다. 대영박물관.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를 새긴 동전이다. 대영박물관.

주화 속 얼굴 모습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클레오파트라의 첫 연인은 카이사르다. B.C47년 이집트에서 처음 만났을 때 클레오파트라 22살, 카이사르는 54살. 둘은 나일강가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소문난 카사노바 카이사르가 로마로 돌아갈 때, 임신한 클레오파트라는 미래의 아기 아빠 카이사르에게 알렉산드리아 학술연구기관 무세이온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를 딸려 보낸다. 소시게네스는 로마에서 이집트 태양력에 기초한 새 달력을 제안한다.

카이사르.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새긴 주화. 영국 사이렌세스터 박물관
카이사르.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새긴 주화. 영국 사이렌세스터 박물관

카이사르가 이를 받아 B.C 45년 11월 1일자로 시행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율리우스력이다. 소시게네스는 1년을 365.25로 계산했지만, 달력에서는 365일임으로 1년에 0.25일이 남는다. 4년에 1일이 더 생긴다. 그래서 4년에 1번씩 1일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0.25일 문제를 해결한다. 이 율리우스력이 오늘날 지구촌에서 쓰는 달력일까? 아직 아니다.

스포르차 성. 밀라노의 지배가문이던 스포르차 가문이 15세기 완공한 성.
스포르차 성. 밀라노의 지배가문이던 스포르차 가문이 15세기 완공한 성.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정한 부활절과 율리우스력의 문제

이탈리아 북부의 패션 도시 밀라노로 가보자. 14세기 고딕 양식의 웅장한 밀라노 대성당과 15세기 르네상스 양식의 스포르차 성 중간지점에 퇴색한 궁궐유적이 자리한다. 화려한 성과 성당에 밀려 주춧돌만 을씨년스러운 이 궁전터에서 인류 역사가 새로 쓰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이곳에서 동로마 황제 리키니우스와 밀라노 칙령을 내, 기독교에 자유를 안긴다.

밀라노 대성당. 5세기 처음 세워진 자리에 14세기 완공한 고딕양식 성당이다.
밀라노 대성당. 5세기 처음 세워진 자리에 14세기 완공한 고딕양식 성당이다.

12년 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부활절 날짜를 정한다. 기독교에서 부활절의 의미는 각별하다.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영역을 벗어나 신의 반열에 오른다. 기독교 신앙의 원초적 토대다. 이후 기독교는 비약적으로 팽창하며 로마 국교 지위에 오른다. 서로마제국 멸망 뒤, 게르만족의 중세에도 유일 종교로서 위치를 굳힌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365.25인데, 실제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는 365.2422일이다. 1년에 0.0078일이 더 계산된 셈이다. 128년에 1일, 400년에 3일씩 있지도 않은 날이 더 생긴다. 기독교계는 이를 심각한 문제로 봤다. 기독교의 신앙적 뿌리 부활절 날짜 때문이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해진 부활절 날짜가 1500년대 9일 이상 밀렸다. 부활절을 엉뚱한 날에 기리는 문제를 풀어야 했다.

◆교황 그레고리 13세 1582년 그레고리력 제정

로마를 가로지르는 티베레강 서쪽의 교황 거처 바티칸으로 가보자. 베드로 대성당 돔 천장에 오르면 베드로 광장과 로마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장관이다. 1582년 이곳에서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클라비우스에게 달력 개정을 주문한다. 클라비우스의 계산을 바탕으로 교황은 1582년 10월 4일 자정 즉 5일 0시를 10월 15일로 삼는다.

베드로 광장.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돔에서 내려다본 모습.
베드로 광장.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돔에서 내려다본 모습.

지난 1200년간 생긴 10일을 없애며 부활절 날짜를 325년 니케아 공의회 시절로 되돌린 거다. 이를 그레고리력이라고 부른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달력이다. 율리우스력은 4년에 1번, 400년에 100번 1일을 늘리는데, 그레고리력은 400년에 97번 1일을 늘린다. 율리우스력은 128년마다 1일씩, 그레고리력은 3000년에 1일씩 없는 날이 생긴다. 그러니까, 서기 4500년쯤 1일 오차가 생긴다. 그만큼 정교해진 거다.

우리나라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뒤, 일제가 주도한 을미개혁 때 그레고리력을 채택한다. 1054년 로마 가톨릭과 갈라선 그리스 정교권의 그리스, 키프로스, 러시아에서는 종교적으로 지금도 율리우스력을 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이다. 그레고리력을 만들 때보다 3일이 더 뒤로 밀렸다. 파스칼이 높이 치켜세운 그리스계 금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 카이사르의 러브 어페어가 달력 앞에서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세모(歲暮)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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