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 앞으로는 전자(반도체)와 쇳물이 쌀이고 통일벼야."
1972년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소리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단호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 나왔다. 1973년 12월, 박 전 대통령은 구미국가산업단지 완공식에 참석해 "이제 구미산단에서 산업의 쌀(전자, 반도체)을 생산하겠다"고 공언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착공 3년 만에 포항제철소를 완성, 첫 쇳물을 뽑았다. "조상의 혈세(대일청구권자금)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했던 불굴의 의지는 전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후 반세기 만에 구미산단은 대한민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게 했고, 포항제철이 쏟아내는 쇳물은 산업의 쌀이 돼 나라를 살찌웠다. 박 전 대통령의 미래지향적 국정 운영과 선제적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은 "구미산단의 전자·반도체와 포항 철강은 먹는 가난을 끊은 통일벼처럼 대한민국이 경제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찬란했던 '낙동강 기적'은 스멀스멀 잊히고, 꺼져가고 있다. 대기업 하청 계열화 구조와 생산공장의 수도권·해외 이전 등 내외부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구미산단 생산액은 2004년 46조원으로 전국 산단 생산액(408조원)의 11.4%를 차지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2년 3.9% 수준에 그쳤다. 포항제철도 수도권으로 기능을 점점 옮겼고, 협소한 부지 등으로 신규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 꺼져가기만 할 것인가. 새해 2024년 갑진년(甲辰年)을 '제2의 낙동강 기적'을 일구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기조와 구미, 포항의 발 빠른 산업재편 노력 등이 맞물려 대구경북의 성장 군불을 다시 지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구경북 국가산단의 변화와 혁신이 '제2의 낙동강 기적'의 마중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포항제철과 구미 1국가산업단지의 경우, 포항은 배터리특화단지로 구미는 반도체특화단지로 변신해 경북 신 성장판을 이끌 출발점이 되고 있다. 대구 역시 14년 만에 유치한 100만 평 규모의 제2국가산단 등 달성군 첨단 산단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발전 축을 완성했다.
포항과 구미에 집중됐던 산업 기능도 지난해를 기점으로 대구경북 전 영역으로 대폭 확장돼 지역 경제 지도를 넓히고 있다.
영주 베어링 산단이 북부권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 최종 승인됐으며, ▷안동 바이오생명 ▷울진 원자력수소 ▷경주 SMR(소형원자로) 등 신규 산업단지가 경북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새 산업으로 비상(飛上)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의 새로운 하늘길과 바닷길을 열 신공항과 포항 영일만신항이 대구경북의 핵심 성장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낙동강 기적의 '마지막 퍼즐'은 결국 사람에게 찾아야 한다고 정·재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박정희 대통령이 보여줬던 미래지향적 '선제적 결단'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리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 지역 출신인 김현도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부사장은 "대구경북은 새마을운동, 낙동강 전선 방어 등 불가능을 가능케 한 선배들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마음속에서 그 자부심과 DNA를 갖고 있다"며 "지난날 구미산단과 포항제철을 있게 했던 미래지향적 결단과 단합이 필요하다" 강조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지난해 반도체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방산혁신클러스터 지정 등으로 구미산단의 첨단화 모멘텀을 마련했다"면서도 "정부의 관심어린 후속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대구경북은 가장 높은 지지율로 윤석열 정부 탄생을 이끌었듯이 보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부동한 가치와 신념을 지닌 곳"이라며 "선비정신, 구국정신 등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더욱 지키고 계승해 청룡의 해에는 대구경북이 비상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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