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당시에는 관례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당시에는 관례로 통하던 게 있었다. 1960~70년대 정치인들은 카메라가 앞에 있거나 말거나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웠다. 회의장이나 정치 집회에서도 그랬다. YS, DJ가 피우는 모습도 화면에 잡혔다. 실내 흡연이 권위를 보여주는 매우 관례적인 방식으로 여겨졌다. 뿌연 연기 사이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기록 영상으로 남아 있다.

관례처럼 나돈 항설 중에는 배가 나온 것이 '덕'(德)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정치인들의 불뚝한 배를 넉넉한 인품으로 칭송한 것이다. 대머리가 강한 스태미나의 증거라는 낭설도 마찬가지다. 당시 대머리 대통령을 미화할 작정으로 관변단체가 총동원됐을 거라는 설익은 음모론도 있었다. 지금 보면 질병에 가깝게 취급되는 흡연, 비만, 탈모가 권위로 둔갑했던 시절이었다. 관례라는 이름으로 통하던 무지(無知)였다.

소설가 김훈은 '아들아,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마라'는 글에서 평발로 군면제 가능성을 두드려 보던 아들에게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질 것을 당부한다. 관례적으로 평발이 군면제 사유라 납득되던 때가 있었다. 장거리 행군 등에 부적합하다는 게 이유였다. 작가는 "나라를 지키는 일은 아버지 세대가 늙으면 아들 세대가 물려받아야 하는 것이고, 몇몇 비굴한 이탈자들로 신성이 모독되었지만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은 아니니,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고 썼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을 응원하는 이들이 탄원서에 "체험활동 증명서 부분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례였다"고 적었다. 불법임이 분명한데 입시 조작이 관례이던 때가 있었다니, 1970~80년대 이야기인가 싶었더니 2010년대다. 4만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는 탄원서에 반성은 읽히지 않는다.

1980년대는 340점 만점의 학력고사 성적으로 입학 문턱의 높낮이가 책정됐다. 부모의 재력, 학벌이 개입될 여지가 없어 비교적 공정하던 때다. 홀어머니 밑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이들이 소개될 때면 너나없이 눈시울을 붉히던 시절을 이미 살아온 바 있다. 뒤늦게 대입 절차가 관례적으로 부모의 개입과 불법을 용인해왔는지 안다. 이런저런 증명서 하나 재깍 만들지 못한 부모의 자괴감을 다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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