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나무 이름이 뭥교?
먼나무!
(무슨 나무냐는 투로 알아듣고 손짓하며 다시 묻는다)
저 나무 말이시더
먼나무요!
놀리능교 뭔 나무냐고 묻잖아요?
나무 이름이 먼나무시더
진짜 나무 이름을 말해도 말장난이나 아재개그가 되는 대표적 나무 이름이 먼나무다.
자생지로 알려진 제주도나 전라남도 지역에 가면 가로수로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나무다. 제주 가로수 가운데 열 그루 중의 하나 꼴로 겨울 거리를 붉게 밝히고 있다. 먼나무는 추위에 약하지만 겨울에도 싱싱한 초록의 이파리 사이사이에 매력적인 빨간 열매를 매달고 새들을 유혹한다. 겨우내 볼 수 있는 먼나무의 열매는 새들의 양식이 될 뿐만 아니라 고운 때깔 덕분에 조경수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먼나무의 이름이 아직 생소하다. 추위에 약해 겨울나기가 힘들어 자연히 볼 수 없었다. 겨울 공원에는 주황이나 선홍색의 작고 앙증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피라칸타, 호랑가시나무, 남천 등이 주종을 이뤘다. 여기에 조금 더 운치 있는 풍치목 대열에 먼나무도 합류했다. 두류공원에 십여 그루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먼나무 이름 유래
먼나무라는 이름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說)도 있다. '먼나무는 멀리서 봐야만 겨울에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아름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나 나무 열매가 너무나 멋져서 '멋진 나무'에서 먼나무로 부르게 됐다는 설명은 호사가들 사이에 그럴 듯하게 전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잎이 멀리 붙어있는 나무'에서 먼나무 이름이 나왔다는 설명도 있는데 먼나무와 생김새가 비슷한 감탕나무와 비교할 때 먼나무의 잎자루가 감탕나무보다 상대적으로 길다. 먼나무의 다른 이름이 좀감탕나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먼나무를 '먹낭' 또는 '먼낭'이라 부른다. '먹'은 '검다'는 뜻이다. '검다'는 의미는 나뭇가지가 검다는 뜻과 잎이 떨어지면 수분이 빠지면서 조직이 파괴돼 검게 변한다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먼나무의 껍질은 회백색이고 가는 가지는 진한 갈색인 경우가 많아 검다는 말과 거리가 있는 반면 잎은 떨어져 마르면 색이 검게 변한다. 따라서 낙엽이 검게 변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됐을 가능성도 있다.
[{IMG03}]일본에서도 먼나무를 쿠로가네모찌(クロガネモチ·黒鉄黐)라고 부르는데 '철과 같은 검은빛을 띠는 감탕나무'라는 뜻이다.
『조선식물향명집』을 풀어쓴 책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는 먼나무 열매가 옛날 작은 사과인 '멋[柰·내]'을 닮았다는 뜻에서 '멋나무' 혹은 '먿나무'에서 발음이 먼나무로 변했다는 설명도 있다. 먼나무의 이름을 채록한 지역이 자생지 중의 한 곳인 전라남도이고 그 지역 토박이말이 반영돼 동정됐을 것이라고 덧붙여 있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 시인 류인서의 「먼나무」라는 시에는 이름에 얽힌 몇 가지 상상을 버무려 시간적 공간적 정서적 거리감과 서먹서먹함이 담겨 있다.
겨울나무 붉은 열매 속을 걸으며 누군가
어쩜 먼나무인 줄 알았네, 하고 탄식하듯 낮게 읊조린다
스쳐가는 그 말끝 건져올려 '먼나무 당신' 소리없이 되뇌면
머나먼, 눈먼, 나무 한 그루 떠듬떠듬 지팡이도 없이
보이지 않는 눈밭을 헛밟으며 온다
잎자루에서 이파리까지 먼나무
어둠들 청수바다 건너 노래만큼 먼나무
발자국도 그림자도 얼룩얼룩 붉은 문장 저 나무, 구름과
새도 아직 보지 못한 먼나무
<시집 『여우』 2009>
◆빨간 열매가 주는 겨울 존재감
먼나무는 제주도에 많이 자라고 전라남도 보길도에도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탕나뭇과의 키가 큰 상록수로 10m 정도로 성장하며 나무줄기는 회백색의 비교적 매끄러운 껍질을 가지고 있다. 두터운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게 달리는데 약간 반질반질한 느낌이다.
꽃은 초여름 무렵에 손톱만한 연보라색으로 핀다. 암·수딴그루이기 때문에 암꽃과 수꽃은 다른 나무에서 맺힌다. 새로 나온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 크기가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꽃이 언제 피었는지 알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빨간 열매는 나무에 따라 이듬해 꽃필 때까지 달려있는 경우도 있어서 차나무처럼 꽃과 열매가 함께 달리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로 여기기도 한다.
먼나무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꽃이 귀해 흑백 사진처럼 삭막 겨울 풍경에 초록 잎과 붉은 열매로 색감을 채워주는 존재감이다. 눈이 소복소복 내려서 푸른 잎과 선홍색 열매 위로 하얗게 쌓이면 가히 환상적이다.
맑은 겨울날 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작은 새들이 빨간색 열매를 먹기 위해 제 집 드나들 듯 날아다닌다. 먼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빨간 열매는 나름의 씨앗 퍼트리기와 관련이 있다. 다른 나무에 비해 유난히 빨갛고 많은 열매를 겨울 내내 달고 새들을 유혹한다. 먹을 게 부족한 겨울동안 먼나무는 주린 새들의 요긴한 식량창고 역할을 한다. 새들은 열매를 먹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서 씨앗을 배설을 할 것이며 그곳에서 먼나무는 자손을 퍼뜨린다.
◆대구에 뿌리 내린 먼나무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부산, 남해안, 울산, 전남, 광주에서는 먼나무의 가로수나 공원의 조경수를 쉽게 볼 수 있다. 관상수로 점차 각광받자 경북 경주의 카페나 가정집에 정원수로 심을 정도로 생육지가 점차 북상하고 있다.
그동안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서 대구와 동떨어져 있던 먼나무를 최근엔 공원에서도 완상할 수 있게 됐다. 대구시립두류도서관 앞에 10여 그루가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고 있다. 2019년 두류도서관 주변을 정비하면서 야외에서 시민들이 휴식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식재했다. 처음에는 단풍나무를 심으려했으나 규격에 맞는 나무가 없어서 생각을 바꿔 상록수이면서 겨울철 빨간 열매가 인상적인 먼나무를 대신 심었다고 한다.
정진우 전 두류공원관리소장은 "따뜻한 지역에 사는 남부 수종인 가시나무나 홍가시나무가 대구에 이미 가로수나 공원 조경수로 뿌리 내려 잘 자라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옮겨 심은 첫해의 추위를 견뎌서 괜찮게 활착했다"며 "남해 지역 농원에 직접 가서 열매가 맺힌 암그루만 골라 사와 심었다"고 회상했다. 대구 두류공원의 무채색 겨울 풍광이 푸르고 붉게 꾸며지기를 기대한다.
◆실내 공기정화 능력 탁월
먼나무는 조경수나 관상수뿐만 아니라 쓰임새도 다양하다. 먼저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산세베리아보다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가 지난 2008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먼나무 등 4개 수종을 대상으로 공기 오염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주입한 뒤 외국산 공기정화 식물과 비교한 결과 포름알데히드 제거 능력이 최고 35%포인트 높았다.
같은 환경조건에서 포름알데히드를 피부질환 유발 수준인 농도 0.04을 공급한 뒤 5시간이 지났을 때 측정한 결과 널리 알려진 산세비에리아는 오염물질의 60% 정도를 제거한 반면, 먼나무는 오염물질 95%를 없앤 것으로 확인됐다.
먼나무는 옛날부터 한약재로도 쓰였다. 줄기 껍질 또는 뿌리껍질을 약으로 쓰는데 생약이름은 구필응(救必應)이다. 청열, 해독, 이습, 지통에 효능이 있어 감기 발열, 편도선염, 만성 간염 따위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먼나무의 목재는 기구나 조각품 또는 완구를 만드는데 이용된다.
◆식물학자 툰베리 학계에 처음 보고
먼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다. 이 나무를 서양 학계에 처음 보고한 사람은 동인도회사 직원인 식물학자 툰베리다. 먼나무 학명(Ilex rotunda Thunb.)에 그의 이름(Thunb.)이 들어 있다.
1775년부터 일본에 2년간 머물렀던 그는 다양한 식물을 발굴하고 식물학계에 보고하여 '일본의 린네(식물 분류학의 기초를 다진 스웨덴 식물학자)'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달갑잖은 인물이다. 한국과 일본에 고루 분포돼 자생하는 식물 중에 많은 종의 학명에 일본이 들어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흔한 사철나무의 학명 (Euonymus japonica Thunb.)을 보면 속명 뒤에 일본을 뜻하는 라틴어 자포니카(japonica)를 붙여 마치 일본 고유종처럼 느낄 수도 있다. 말오줌때, 인동덩굴, 오리나무, 식나무, 광나무 등의 국내에 흔히 자생하는 나무의 학명도 그렇다. 그나마 먼나무 학명에 'japonica'가 안 들어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언론인 chunghama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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