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떡볶이와 호러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달콤한 고통'이라는 점이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폴 블룸(Paul Bloom)이 쓴 책인 〈최선의 고통〉(역서)에 나와 있는 말이다. 달콤한 고통이라니, 웬 역설적인 표현인가? 그는 인간이 쾌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고통과 노력을 요하는 활동에 관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녔다고 말한다. 고통이라는 말이 욕구라는 말과 어울리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진다. 그리고 최선의 고통이라니, 고통에도 최선이라 불릴 수 있는 일종의 고통의 등급 같은 것이라도 있다는 말일까?
그는 적당한 수준의 통제된 고통이 쾌락(행복감)을 증가시킨다고 보고 이를 '온건한 마조히즘'(benign masochism)이라 명명하였다(역서에서는 양성 피학증이라 번역하였다). 스릴러 영화를 꽤 즐겨 보는 편인 나로서는 이 온건한 마조히즘이라는 말이 썩 마음에 든다.
사우나나 한증막에 들어가 땀을 쏟고 나면 마르고 건조한 일상이 조금은 개운해지는 느낌이 있는 것처럼, 단서 하나 놓칠세라 집중과 긴장의 상태로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헐렁해진 일상을 조금은 조여 놓은 것 같아 약간 안심이 되는 듯한 그런 느낌을 잘 표현해 준 것 같아서 말이다.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즐긴다는 의미의 이 온건한 마조히즘을 경유하는 것을 통해, 건조하고 헐렁한 일상에서 자신의 현재가 더 온전하게 살아 있는 느낌으로 각성된다는 것.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는, 흔히 '3요'라 불리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MZ세대 직장인들이 많이 하는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교사로 재직하는 제자들에게 듣기로는 요즘 중고등학생들도 꽤 많이 쓰는 말이라 한다. 일과 관련하여 부당한 지시를 받지 않겠다는 당찬 면이 있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실은 이 말이 대체적으로 귀찮음과 회피의 의미로 쓰인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복잡하고 힘든 일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이기도 하다.
'고생은 사서 한다'라고 말하면 꼰대가 되고, '3요'가 유별나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 심지어 오락물인 드라마나 영화조차도 오랜 시간 진득하게 앉아서 보아야 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유튜브를 통해 요약본만 감상하는 초스피드, 초간편 추구의 시대. 이런 시대에 과정 자체를 몸으로 관통해야만 얻어질 저 '달콤한 고통'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케이블카를 타는 대신 힘들게 산을 오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오지와 극지를 탐험하며 그야말로 생고생을 하기도 하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겨울에 봉사를 하는 일.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일임에도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들이면서 매달리는 일. 이 달콤한 고통들은, 단순하고도 반복적이어서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는 삶이라는 덫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한 기꺼운 고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삶에 조금씩 무늬를 새겨 넣는, 내가 찾아가는 고통.
재난이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인한 외상 후 성장과 그로 인해 깊어진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는 연구자들이 많지만,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고 폴 블룸은 말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고통은 끔찍하며,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고. 고통에도 수준과 등급이 있는 것이 맞다. 그러니 그의 말처럼 또 다른 최선의, 달콤한 고통을 찾아나서 보기로 한다. 동시대 세계적인 석학이라 할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실재의 사막, 그 생기 없는 삶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정정순 영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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