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의찬의 배짱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기자는 지난 22일 이 지면을 통해 얄타회담에서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를 소련에 넘겨주도록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결정적 자문을 한 앨저 히스가 소련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원 '비미(非美)활동위원회'에서 주장했다가 위증죄로 처벌받은 사실을 소개했다.

히스가 간첩죄로 처벌받지 않은 것은 소멸 시효(時效) 만료 때문일 뿐 간첩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히스는 1957년 '여론의 법정에서'라는 회고록을 시작으로 죽을 때까지 결백을 주장했다. 여기에 미국 좌파들이 호응하면서 히스의 '무죄'는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 하원 의원의 발의로 1995년 7월 미국 정부가 '베노나(Venona) 프로젝트' 문서를 공개하면서 히스의 거짓말이 들통났다. 베노나 프로젝트는 1943년 스탈린이 히틀러와 별도의 강화조약을 협상 중이라는 소문이 돌자 미 군사정보국의 카터 클라크 대령이 착수한 소련 암호 교신 감청·해독 기밀 작전이다. 클라크 대령은 이 작전을 루스벨트나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는데, 좌파를 요직에 기용했던 그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문서는 놀라웠다. 재무부 고위 관료로, 2차 대전 종전 후 독일에서 화폐 대신 쓸 미군 군표(軍票) 인쇄용 동판을 소련에 넘겨 미국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해리 덱스터 화이트, 원자탄 기밀을 소련에 넘겼다가 사형된 로젠버그 부부 등 간첩 혐의를 받았으나 결백을 주장한 인물들이 모두 소련 스파이로 확인된 것이다. 그 대열에는 히스도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무 특보인 정의찬의 거짓말이 딱 그 꼴이다. 그는 조선대 총학생회장 때 민간인 이종권 씨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구타해 사망케 한 사건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민주당 공직 후보 심사에서 탈락하자 "(사건) 현장에 없었고 지시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문 내용이 공개되면서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렇게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대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그나마 히스의 거짓말은 탄로 나기까지 40년 이상이 걸렸지만 정 씨의 거짓말이 버틴 시간은 2주도 채 안 됐다.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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