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4월 총선은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다.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체제 선택에 버금가는 선거란 뜻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체제 선택을 위한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는 세 차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1948년 5·10선거로서, 한국민은 공산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 한국 역사 100년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지난해 마지막 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한반도 사진이 그 선택의 결과를 잘 말해 준다. 38선 북쪽은 칠흑 같은 밤이고, 남쪽은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빛나고 있다. 둘째는 1967년 대선으로, 한국민은 산업화를 선택했다. 셋째는 민주화를 선택한 1987년 대선이다. 이 세 번의 선택을 통해 대한민국은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완수하며 굴지의 선진국으로 우뚝 서는 기적의 역사를 썼다.
하지만 이 성공 신화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적의 역사'를 '청산해야 할 역사'로 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후보 시절, "조선시대 때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 세력이 일제 때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쓴 독재 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대청소'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대한민국이 묻는다』) 적폐 청산과 국가 개조라는 공약이 그렇게 나왔다.
문재인 정부 때 보수 진영 1천여 명이 수사를 받고, 200여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 문재인 정부는 자유선거로 집권했지만, 오히려 촛불 '혁명'에 방점을 찍었다. 그렇게 역사 전쟁이 시작되었다.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둘러싼 대립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보통 사람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2022년 대선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선택하는 중대선거였다. 윤석열 후보는 불과 0.73%포인트(p)로 신승했다. 놀라운 숫자였다. 기적의 역사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이토록 깊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시장 원리를 존중하고,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천명했다. 나라를 정상화시켰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 졌다. 득표율 차이는 17.15%p로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2020년 21대 총선 때의 18.08%p와 거의 같다. 드러난 민심은 정부 심판론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은 필패다.
국민의힘의 첫 반격 카드는 인요한 혁신위였다.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최근 한동훈 비대위가 등판했다. 남은 시간을 보면 최후의 카드다. 불리한 국면을 뒤집고 선거에서 이기려면 최소한 100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
지난 12월 26일, 한 비대위원장은 수락 연설에서 '청산'을 첫 번째 비전으로 제시했다. 최우선 대상은 민주당의 586운동권 특권 세력이다. 그들이 중대 범죄와 개딸 전체주의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52%가 공감하고, 38%가 반대했다. 일단은 성공적이다. 한 위원장은 '무기력에 안주'하는 국민의힘도 약한 청산 대상으로 봤다.
하지만 이 연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국민만 바라봅시다"이다. 청산은 물론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 인구 재앙 등에 대한 대책 등 모든 어젠다는 이 바구니 안의 달걀들이다. 국민만 바라보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정치인이나 진영, 정당의 이익보다 국민 먼저일 때, 선당후사보다 선민후사할 때, "'국민의힘'보다 '국민'이 우선"일 때 가능하다는 게 한 위원장의 생각이다.
중앙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58%가 검찰공화국 주장에 공감하고, 37%가 반대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65%가 반대하고, 25%가 찬성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37%, 부정 60%다. 그동안 국가의 방향을 바로잡고, 쉴 틈 없이 국정에 매진해 온 대통령과 여당은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지금 국민의 뜻이다. 한 위원장은 오직 국민만 바라볼 수 있는가? 이것이 한 위원장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사실상 마지막 질문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가르는 중대선택(critical choi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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