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철마는 달빛철길을 달리고 싶다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2년 전 한 시중은행이 '여섯시 은행' 운영을 시작했다. 보통 은행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가 아니라 오후 6시까지 창구에서 직원이 손님을 맞는 영업 방식을 채택했다.

고객의 일상과 금융기관의 영업시간을 일치시키겠다는 친절한 의도였다.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그래서 도입 때보다 대상 지점을 확대 시행 중이다.

금융소비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었다는 호평이 나온다.

'여섯시 은행'은 2022년 3월 전국 72개 지점에서 문을 열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 34개, 경기·인천 19개,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충청 각 5개, 광주·전라 4개 지점이 한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데 지역의 운영 지점 수를 모두 합쳐도 인천과 경기 지역 운영 지점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은 시쳇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민간기업의 경영 목적은 이윤추구다. 따라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인위적인 안배는 배척한다. 해당 은행에 문의했더니 '유동 인구수'를 기준으로 '여섯시 은행' 시행 지점을 선정했다고 한다.

사람·재화가 몰리는 서울과 위기를 맞은 지역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심지어 아무런 보정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수치다.

아쉽게도 '근무시간 중 은행 방문이 어려운 직장인과 사업자 또는 혼잡시간을 피해 편안하고 여유 있는 상담을 하고 싶은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양질의 혜택이 수도권에 편중되는 형국이다.

서울에 34개나 있는 '여섯시 은행'이 대구·경북에는 5개뿐이다. 오후 4시 이후 급하게 은행 볼일이 있는 서울 시민들은 사실상 각 자치구(25개)에 하나 이상씩 운영 중인 '여섯시 은행'을 이용할 수 있지만 경북에는 '여섯시 은행'이 단 한 곳이다.

'여섯시 은행'은 고객들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지자 지난해 8월 대상 지점을 늘리면서 수도권과 지역에 각각 5개 지점을 더 확대 운영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고 특히 지역에서 이용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 수도권과 지역에 똑같은 수의 지점을 확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굳은 약속에도 지역균형발전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야심 찬 포부를 밝히면 '시골에서 뭘 하겠다고 나서나!'라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가까스로 기회를 잡아 국제행사를 진행하다가도 삐끗하면 지방정부가 '독박'을 쓴다.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 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물론 헌법 개정도 가능한 현역 국회의원 261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법안인데도 이 모양이다.

특별법안이 국회 통과를 위한 최종 문턱을 향하자 곳곳에서 딴지를 건다. 예산 당국에선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긴축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무리한 공사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수도권 언론'들은 또다시 '이용객도 없는 시골에 무슨 대형 사회간접자본 투자냐!'며 눈을 흘기는 중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의 압박이 거세지자 코너로 몰린 예산 부처가 수도권 언론을 움직여 여론전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대한민국에서 소외를 순순히 감당해야 하는 2등 국민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민간기업조차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지 않기 위해 경제성 판단을 뒤로하고 약자의 편에 선다. 하물며 세금을 수입원으로 하는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어떠해야 하겠나.

철마는 지역균형발전의 염원을 담아 달빛철길을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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