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신춘문예 열병

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신문사별로 2024년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가 새해 첫날, 첫 신문의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신춘(新春)의 봄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일은 막막한 문학의 겨울 바다를 항해하던 문청들에게는 희망의 등대를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

신춘문예 공고가 뜨고 마감일이 임박해지면 문학 지망생들은 몸살을 앓는다. 나 역시 신춘문예 열병을 심하게 앓았다. 해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면 신문이란 신문을 모조리 수거해서 신춘문예 관련 기사와 당선작을 샅샅이 훑어보는 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다.

당선 통지를 미리 알려오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해 첫 신문이 나오면 해 뜨기 무섭게 동대구역 신문가판대로 달려가 신춘문예 당선자 공고를 한자씩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각 신문사의 당선작을 펼쳐놓고 심사위원의 성향까지 따져보면서 내년에는 반드시 신춘문예에 당선하겠다는 각오를 다짐하며 칼을 벼르듯 펜촉을 갈았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좁은 문은 열리지 않았다.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의 열쇠를 쥐게"된 기형도 시인은 당선 소식을 받고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모종의 힘에 떠밀려 나는 복도로 걸어 나가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라고 당선 소감에서 밝힌 바 있다. 신춘문예로 등단의 문을 열고 들어선 기쁨이 무척 컸으리라.

어느 해부터는 몇몇 신문의 신춘문예에 단골로 최종심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문학상에 당선된 적이 있는데 심사를 맡은 박재삼 선생님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도 손색이 없다"라고 격려 삼아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신춘문예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한동안 자만에 빠져 당선 소감을 미리 써 놓고 기다리던 어리석은 청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십 번이나 문예 현상 공모에 당선하고 백일장에 나가기만 하면 장원을 차지하는 아이돌(?)이었기에 신춘문예가 아니면 차라리 등단하지 않겠다는 고집과 자만으로 한국문단의 유명 시인이 배려한 추천 제안마저 거절하였다. 신춘문예로 화려한 등단을 하겠다는 욕심은 20대가 끝나기 전에 일찌감치 접어버렸다. 대학 시절 월간 '시문학'이 주관하는 문예 현상 공모에 당선돼 추천 자격을 얻은 것으로 동인지와 문예지 등에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나의 문청시절을 돌이켜보면 어설픈 삶의 파편을 꿰맞추는 일 같아 웃음이 나오지만 분명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고 다시 걷고 싶은 여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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