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더없이 어울리는 그림이다. 푸른 바다 위로 붉은 해가 고운 구름을 두르고 수평선 위로 떠오른다. 화면을 대각선 구도로 시원하게 나눴다. 왼쪽에는 우뚝한 소나무에 한 쌍의 학이 자리 잡았다. 송학은 송수천년(松壽千年)의 소나무와 신선이 탄다는 선학(仙鶴)을 조합한 대표적 장수 상징 중 하나다.
창해(滄海), 일출(日出), 채운(彩雲), 노송(老松), 단정학(丹頂鶴) 등 상서로움의 집합인 '일출송학도'는 겸재 정선의 작품이다. 소나무가지 위쪽으로 '겸재(謙齋)' 서명과 정선의 자(字)를 새긴 인장 '원백(元伯)'이 있다. 그 뒤에 누군가가 감상을 적어 넣었다. "준해이동(遵海而東) 혹차경계(或此境界)", 곧 "바다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혹시 이런 경계일까?"이다.
'일출송학도'는 독일 베네딕도회(분도회)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원장이 수집해 갔던 '겸재정선화첩'에 들어있다. 금강전도를 비롯해 금강산과 실경산수, 정형산수, 고사인물 등 무려 21점 수록된 소중한 화첩이다. 베버 신부는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에 왔었다.
이 화첩의 존재는 독일 쾰른대학교에 유학 중이던 유준영 교수에 의해 1975년 발견돼 국내에 알려지게 됐다. 이 화첩을 추적하던 유준영 선생이 오틸리엔수도원을 찾아가 지하 1층 선교박물관 진열장에서 '겸재정선화첩'을 첫 대면했을 때 펼쳐져 있었던 그림이 '일출송학도'였다.
이후 이 화첩을 연구한 미국인 학자의 논문이 1999년 '오리엔탈 아트'에 실리자 국제 미술상들이 주목하게 된다. 뉴욕 크리스티에선 두 차례나 독일로 직원을 보내 경매에 내놓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오틸리엔수도원은 이 화첩의 중요성을 절감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선지훈 신부의 끈질긴 노력에 화답하며 2005년 영구대여 형식으로 왜관수도원으로 보내 주었다. 선지훈 신부님과 문화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고귀한 선택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12명의 오틸리엔수도원 장로들께 감사를 드릴뿐이다.
'일출송학도'는 새해맞이 그림인 세화(歲畵)다. 시간의 속절없는 흐름에 어떤 매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해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며 새 아침의 희망을 또다시 꿈꾸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세시풍속에는 옷차림과 음식, 놀이와 행사뿐 아니라 그림과 글씨도 있다. 집안 치장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봄이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등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세화, 입춘첩은 생활 속으로 들어가 세시풍속이 된 미술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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