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의료전달체계는 '모래시계형' 구조로 뒤틀려있다. 동네의원과 상급종합병원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할 종합병원이 턱없이 부족해 경증이나 중등증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1차→2차→3차'로 이어져야할 전달체계가 '1차→3차→2차'로 역전되면서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2차 종합병원들은 운영난과 의사 구인난을 겪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기형적인 의료전달체계가 고착화되면 응급실 과밀화와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돼 적기·적정 치료를 방해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지역 의료계의 우려다.
◆비수도권 최다 상급종합병원…의료전달체계 독 됐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대구 한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꽤 한산했다. 간호사 3명과 담당 의사 1명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환자는 많지 않았다. 같은 시각 경북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이 북새통을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 병원 원장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환자 대부분이 경증이고, 우리 병원에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데도 상급종합병원을 선호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구시내에 2차 종합병원이 유독 적은 것은 상급종합병원의 인프라가 비수도권 최고 수준인 점과 관련이 깊다.
대구의 상급종합병원 숫자는 5곳으로 서울(14곳) 다음으로 많다. 부산, 인천이 각각 3곳, 광주가 2곳, 대전, 울산이 각각 1곳인 것과 비교해도 문턱이 크게 낮은 셈이다.
김건우 대구파티마병원 의무원장은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진단 전 검사까지는 받지만, 진단명을 듣고는 대학병원으로 옮길 지 고민한다"면서 "그 중 대부분은 종합병원에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응급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퇴골 골절이나 장 파열 등 긴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대기하다가 생명을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구자일 구병원 원장은 "교통사고로 장 파열된 환자 두 명이 있었는데 구급차가 한 사람은 우리 병원에, 한 사람은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면서 "우리 병원에 온 환자는 바로 수술을 받아 목숨을 건졌지만,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는 수술 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종합병원 원장은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빠른 처치를 받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대학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 "의사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대구 달서구의 한 종합병원은 신경외과 전문의 2명이 번갈아가며 응급실 당직을 맡고 있다. 밤샘 당직을 서고도 제대로 쉬지 못해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되는 형편이다.
병원 경영진도 신경외과 전문의를 충원하고 싶지만 연봉 5억원 이상을 약속해도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난감한 처지다.
이 병원 경영진은 "전문의가 한 명만 그만둬도 신경외과 응급환자는 치료할 수 없게 된다"며 "사명감으로 운영비와 인건비 등 하루 1천만원 가량 들여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료진을 구하지 못하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지역 의료계는 종합병원이 부닥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의사 인력의 확보를 첫 손에 꼽는다.
종합병원은 '필수의료'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중 3개 이상의 진료과목 의료진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필수의료 과목은 전임의는 고사하고 전공의를 수료한 의사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종합병원 운영진들은 "외과와 산부인과는 전공의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지원자 수 자체가 적으니 종합병원까지 올 인력이 없다"고 했다.
진료과목이 세분화되면서 분야 전체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전문의가 줄어든 점도 인력 확보의 장애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종합병원은 상급종합병원처럼 세부 진료과목별로 전문의를 두지 않고 한 진료과 내에서 다양한 질환을 다루기 때문이다.
전문의들도 자신있는 분야에 특화된 동네의원을 열거나 상급종합병원에 머물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게 의료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지건 삼일병원 원장은 "예전에는 '일반외과'가 있어서 대장항문 전문의라도 소화기 경증 질환은 다룰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요즘은 전임의들도 '배운 분야 이외의 질환은 다루기 겁난다'며 종합병원에 오지 않으려 한다"고 우려했다.

◆'환자 감소→의료역량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과 의사 구인난 등은 종합병원의 의료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의료 서비스 질에 만족하지 못한 환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곽동협 곽병원 원장은 "한 때는 유방암 수술도 가능했고 지금도 초기 대장암 수술 정도는 문제없다고 자부하지만, 초기 암 환자들까지 모두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면서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도 병원을 떠났다"면서 "'살려면 곽병원으로 와라'는 말이 무색해졌다"고 했다.
진료과가 내과와 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등 일부 과목에 편중돼 있고 세부 진료과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특정 질환에 특화된 2차병원에서 100~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덩치를 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화기내과 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체급을 올린 한 2차의료기관의 경우 외과는 유방외과와 대장항문외과 전문의 등 2명이 전부였고, 정형외과와 신경과,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각각 1명에 불과했다.
구자일 구병원 원장은 "응급치료 후 배후 완전치료까지 이어져야 종합병원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데, 의료진 구인난 등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종합병원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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