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In] 20·30여성들의 외침 "일자리 안정 없이 아이 낳기 어렵다"

◆국회입법조사처 2030대 여성 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 방향 보고서
◆고용 안정성, 결혼·출산에 큰 영향…경력단절 낮추고 비정규직 줄여야
◆여성 고용 및 출산 보장을 위한 6가지 구체적인 정책 제안

보고서 표지
보고서 표지

저출산 해법 찾기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떠올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특단의 대책 마련을 준비 중이다. 이런 가운데 20~30대 여성의 입장에서 저출산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논하는 보고서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해당 연령의 여성이 출산 문제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보고서는 출산 정책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전윤정 입법조사관은 지난 12월 29일 '20~30대 여성의 고용·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 발표했다. 보고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2030 여성이 경험하는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30 여성의 경력단절 위험을 낮추고 비정규직 비중을 줄이는 등 청년 여성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작년 0.7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전 세계에서 홍콩(0.77 명)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지난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작년 0.7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전 세계에서 홍콩(0.77 명)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꼴찌에서 2번째'다. 연합뉴스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남녀 불평등

우리나라 여성의 혼인건수와 출산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970년 혼인 30만건, 조혼인율(인구 1천명당의 새로 혼인한 비율) 9.2%에서 1980년 40만건, 조혼인율 10.6%로 늘었다. 이후 2003년 혼인건수는 30만건으로 줄어들고, 2012년 32만건, 조혼인율 6.5%, 2022년에는 19만건, 조혼인율 3.7%까지 떨어졌다.

출생아 수도 80년 86만2천800여명에서 90년 64만9천700명, 2000년 64만명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2012년 48만4천600명으로 대폭 줄었고 2022년 24만9천명으로 지난 10년간 23만5천600명(-48.6%)이 감소했다.

조(粗)출생률(인구 1천명당 출생아 수)은 2012년 9.6명에서 2022년 4.9명으로 10년간 4.7명 하락했다. 합계출산율(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2년 1.3명에서 2022년 역대 최저 수준인 0.78명까지 줄었다.

보고서는 "혼인율의 감소는 여성이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이 늦어지면서 결혼이 지연되고 출산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며 "하지만 여성의 혼인과 출산의 변화 양상, 여성 연령별 출산 규모, 유배우 출산율의 변화는 2010년대 이후 이와 다른 경향이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여성 간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남녀 고용률 격차는 20대에 2~3%에 불과하지만 출산·육아를 경험하는 30대에 들어서면 30% 수준으로 벌어진다. 2023년 기준 30대 남성 고용률은 90%에 육박하지만, 30대 여성 고용률은 54.6~64.4%에 그쳤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남성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반면 여성은 25~29세 사이에 고용률이 가장 높았다가 30대에 하락하고, 40대 이후에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다.

보고서는 "30대에 들어서면 남성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가고 대부분 안정적인 정규직에 입직하는 것에 비해, 여성은 안정적인 고임금에 입직하는 경우가 아니면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용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녀의 비정규직 규모 차이도 크다. 지난해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남자 정규직은 70.2%, 비정규직은 29.8%이다. 반면 여자 정규직은 54.5%, 비정규직 45.5%로 나타났다. 또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중은 30대 초반부터 지속 증가하지만 남성의 비정규직 비중은 50대에 들어선 뒤에야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8일 대구 북구의 한 건설현장 안전펜스에 부착된 저출산 해결을 위한 출산 장려 캠페인 포스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출생아 수는 17만7천명을 기록했다. 이는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준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8일 대구 북구의 한 건설현장 안전펜스에 부착된 저출산 해결을 위한 출산 장려 캠페인 포스터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출생아 수는 17만7천명을 기록했다. 이는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준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직장과 가정에서 역할 양립해야 출산율 늘어

보고서는 유럽 중심의 OECD 국가들이 출산 이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을 소개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와 함께 가장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합계출산율이 2022년 1.79명으로 유럽국가 중에서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의 고용과 출산 정책의 특징은 자녀가 있는 여성에서 경제 활동 지속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준다. 자녀가 있는 여성이 고용을 중단해도 어떠한 불이익도 없도록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게 원칙이다. 고용을 중단해도 양육 수당을 지급하고 사회가 여성들이 희망하는 자녀 수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독일도 좋은 사례로 소개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 출생률이 급감해 94년 합계출산율이 1.24명까지 떨어졌다. 이후 정부가 나서 다양한 정책을 편 결과 출생률이 반등하면서 2015년에는 1.50명을 넘어섰고, 2021년에는 1.58명을 기록했다.

보고서에서는 독일의 노동환경이 여성 출산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과거 독일은 단기 일자리 위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였다. 하지만 여성의 단기 일자리가 소득 수준이 낮고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출산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저임금법' '임금구조 투명성 촉진법' 등 제도 개혁에 나섰다. 여성의 고용을 유지하고 성별 임금 격차도 줄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다양한 노력의 결과 독일의 여성 고용률은 2012년 71.9%에서 2021년 74.4%까지 오르는 등 합계출산율과 비례했다고 보고서는 소개했다.

[그래픽] 초등학교 입학생 수 및 출생아 수 추이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저출산의 영향으로 2017년생인 내년 초등학교 1학년 학생수가 사상 처음으로 40만명 밑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이후 저출산에 더 속도가 붙은 만큼 30만명선을 사수하지 못하는 것도 \
[그래픽] 초등학교 입학생 수 및 출생아 수 추이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저출산의 영향으로 2017년생인 내년 초등학교 1학년 학생수가 사상 처음으로 40만명 밑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이후 저출산에 더 속도가 붙은 만큼 30만명선을 사수하지 못하는 것도 \'시간 문제\'로 전망된다. zeroground@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끝)

◆아이 낳기 좋은 세상을 향한 정책들

보고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고용과 출산을 보장하기 위한 성평등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성평등한 노동시장 정책 수립, 이중노동시장 완화 및 성별격차 해소, 노동시장 모성페널티 제거, 젠더중립적인 일가정 양립제도와 사회정책의 보편화,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립,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가 제안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평등한 노동시장 정책 수립=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고, 여성의 출산 이후 일자리 복귀 보장, 성별 직종분리 완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해소, 경력단절을 낮추고 일자리의 질 개선을 위한 직접적인 정책과 중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20~30대 청년 여성에 특화된 성평등한 노동시장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중노동시장 완화 및 성별 격차 해소=여성노동시장은 성차별적인 채용, 고용불안정, 저임금, 성별직종분리 등 이중 삼중으로 차별적인 구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수직적, 수평적으로 분절돼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제안했다. 비정규직 보호 확대, 비정규직 남용금지와 차별금지 등 성차별적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해 실질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시장 모성페널티 제거=중소업체 여성 근로자나 비정규직에게 태아검진 휴가,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 유연근무, 재택근무, 육아휴직 등이 법조문으로만 존재하는 제도로 전락했다. 불분명한 신청 절차로 사실상 정보를 알 수 없거나 혹은 개인이 상급자에게 부탁 또는 개인적으로 쟁취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가 고용형태, 기업규모, 직종, 직무별로 구분 없이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젠더중립적인 일가정양립제도와 사회정책의 보편화=20~30대 여성들의 선호에 맞는 자유로운 고용, 출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젠더중립적인 시각에서 제도를 수립하고 일가정양립제도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보편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립=시간선택제는 '저숙련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부정적 인식이 많고 '알바' 등 질 낮은 일자리 형태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고용안정성을 가지고 근로자의 생애주기에 따른 일생활균형을 충족시키는 '양질의 시간제 근로 모델'과 다양한 '일자리창출' 정책이라는 확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성화=현재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 제도 사용률은 낮다. 앞으로 더 활성화하고 다양한 운영방식을 도입해 아동양육기 전반에 걸쳐 지원의 범위와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진입하지 못한 대부분의 청년 여성들은 이중노동시장구조로 인한 차별, 성별 직업분리로 인한 직종 간의 격차, 출산 후 경력단절, 성별 임금의 격차 등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차별적 구조에 직면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20~30대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고용유지와 경제활동 참여와 출산율을 함께 높이기 위해서는 성차별적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방식, 수단을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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