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밭, 포도밭이 넓게 펼쳐진 경산 남산면의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문득 만나는 '거인조각연구소'. 조각가 임영규가 17년 째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작업 공간이다.
공장인가 싶을만큼 층고가 높고 커다란 조립식건축물에 '연구소' 간판이라니. 누구든 호기심에 눈길을 줄 만한데,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지붕 위에서 포효하는 호랑이 한 마리다. 2010년 호랑이해, 울산 간절곶에 설치했던 호랑이 작품이다.
"별 생각 없이 올려뒀는데, 마침 남산면 인근 대왕산에 호랑이가 살던 굴이 있었고, 호랑이를 상징처럼 생각하는 지역이더라고요. 주민분들이 참 좋아해주셔서 남산면 초입에 놓인 호랑이 조각품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하하."
그는 영남대 대학원 재학 당시 전국 대학·대학원생 조각대전에서 대학원생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보여왔다. 당시에는 인체를 해제한 뒤 재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몽상' 시리즈를 작업해왔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 이후 의뢰 작품 작업으로 바쁜 그에게 철을 재료로 한 작업은 부담이었다. 보존에도 한계가 있어 좀 더 물성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작업의 변화를 꾀했고, 기성품을 조합해 만든 '오공의 외출' 시리즈를 선보였다. 스스로를 재주 부리는 원숭이 '오공'에 빗대, 익살스러운 모습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그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그 순간을 지켜보며 평생 느껴보지 못한 미묘한 감정과 기쁨, 울컥함을 느꼈다. 자신에 대한 얘기 위주였던 작업이 '생명'이라는 주제로 향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는 "그러한 감동을 경험한 뒤, 생(生)이라는 근본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며 "식물이 전구의 빛 방향을 따라 생장하는 '양성굴광성' 실험이 인상 깊었다. 결국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빛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빛으로부터' 시리즈는 대부분 하늘을 향해 몸을 펼치고 쭉 뻗어나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직선과 곡선의 아름다운 조형미와 역동성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길게 뻗은 손 끝, 발 끝에서 느껴지는 어떤 간절함으로 마무리된다.
"어떻게 보면 빛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희망이지 않을까요. 빛을 향해가는 그 끝에서 작품의 역동성, 생기가 발현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대학 때 로댕이 남긴 '조각은 볼륨이고, 볼륨은 그 끝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본 게 얼핏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 때도 지금도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결국 끝이 생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시작이라는 지금의 생각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고.
임 조각가는 예전에는 과장된 형태를 통해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 임팩트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제는 좀 더 평범하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표현해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눈이 보는 것을 손이 속이지 않게 해달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뭐든 숙달되면 손이 기교를 부리게 된다"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노력하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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