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플랫폼법에 무너진 희망…생존율 20% 오프라인 떠나 이룬 온라인 판로 개척 꿈 '흔들'”…영세 중소기업들의 절규

한국플랫폼입점사업협회 백운섭회장이 8일 오전 공정거래위원회에
한국플랫폼입점사업협회 백운섭회장이 8일 오전 공정거래위원회에 '플랫폼 경쟁촉진법'이 중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내용의 반대입장문을 제출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사전에 지정해 규제하는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 "스타트업에게 성장 기회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입법을 강행하려 하자 벤처와 플랫폼 입점 중소 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스타트업 성장을 가로막는 법을 철회한다"고 나섰고, 영세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도 "중소기업의 매출신장 기회를 위협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처럼 벤처와 중소기업 집단이 나선 이유는 공정위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바탕으로 업계 의견 수렴을 받지 않고 국회를 설득해 입법 강행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플랫폼 규제에 폐업 위기 직면…알리 등 해외 업체 부당한 거래조건 강요받을 것"

8일 정치권과 IT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플랫폼법 관련 입장 설명 자료'를 만들고, 국민의 힘 등 국회에 규제 명분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해당 설명 자료에서 "플랫폼 경쟁촉진법은 거대 플랫폼 건전한 성장을 촉진하고 스타트업에게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법"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랫폼 사전 지정 규제가 오히려 경쟁을 촉진하고, 민생을 보호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 어떻게 스타트업들이 성장 기회를 갖게 되는지 구체적인 설명과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오는 9일 국내 IT벤처기업 연합체인 '디지털경제연합'와 공정위 간의 간담회가 무산됐다.

공정위의 사전 규제는 연 매출과 이용자 수 등 정량적 기준을 정하고, '커트라인'을 넘는 기업을 사전에 지정해 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최혜대우 등 4가지 항목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다. 특정 금지 행위가 벌어지기 전에 '규제 대상'으로 확정짓고 정부가 수시로 조사·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전 지정 대상자로 물망에 오르는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과 별개로 스타트업과 플랫폼 입점 판매자들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해 공정위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1500곳의 중소 플랫폼 판매자들로 구성된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규제로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쇠퇴하면 폐업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플랫폼 경쟁촉진법은 새로운 판로확보와 매출 신장의 기회를 위협하며,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소상공인들의 생존과 직결된 중대 사안"이라며 "오프라인 창업 생존율이 20%가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 입점은 판로 확대와 안정적 매출 신장, 해외 시장 판매까지 지원돼 새로운 희망을 키워나갔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의 할인쿠폰 지원, 상생 프로그램, 신규 서비스로 소비자 접점을 늘려 판매를 늘렸지만 정부 규제로 온라인 플랫폼 산업이 축소되면 알리익스프레스 등 해외 공룡 플랫폼들의 살인적인 수수료와 거래 조건을 강요받을 것이라도 주장했다. 협회는 "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는 검증된 규모의 판매자 상품만 취급하게 되고 진입장벽이 높아지면 중소 사업자들이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공룡' 기업 규제하는 법으로 스타트업 성장 발목 잡아..이게 자율규제인가"

벤처업계에선 "이 법이 금지 행위 여부와 관련 없이 인위적인 '성장의 커트라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매출 2조원·이용자 1000만명' 식으로 커트라인이 생기면 매출 1조원·이용자 500만명을 달성한 플랫폼 스타트업은 그 이상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하거나 일자리를 늘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2년 말 상장 등을 목표한 국내 유니콘 기업 수는 22개로 이 가운데 플랫폼 기반 사업자는 야놀자·토스·위메프·버킷플레이스 등 15개 안팎으로 분석된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이익을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도 이용자 수가 많거나 거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규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어 불안에 떤다"고 밝혔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말하는 '금지 반칙 행위' 여부와 별개로 전 세계적으로 '한국 플랫폼 스타트업은 성장의 상한선이 있다'는 공감대가 성립해 투자가 줄어든다"고 했다. 벤처기업협회가 포함된 디지털경제연합도 지난달 "알리 익스프레스가 국내 2위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사전 규제는 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공정위의 플랫폼법 규제가 벤처와 중소상공인 피해를 넘어 국내와 해외 기업 간의 역차별 등을 낳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는 이에 국회에 "부처간 중복 제재 우려나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에 반하지 않고 역차별 우려도 없다"는 입장을 국회에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자국 플랫폼 기업을 사전에 규제하는 법을 지난해 말 폐기했다. 미국 의회는 공정위가 플랫폼 경쟁법 제정에 벤치마킹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플랫폼 사전규제 법안인 디지털시장법(DMA)을 반대하고 있다.

DMA는 전 세계 시가총액 7위 안에 들어있는 애플(1위), MS(2위) 등 미국 기업 5곳을 규제하고 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틱톡)만 규제한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미국 하원 의원 22명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 미국 기업만 규제하는 DMA가 부당하다는 우려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DMA를 벤치마킹하면서도,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 규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토종 기업 규제를 통해 알리 익스프레스 등 발빠르게 국내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해외 기업이 미칠 파급력과 대처 방안에 대한 입장은 알려지지 않았다.

플랫폼 벤처기업들과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에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공정위는 플랫폼-입점 업체간 갑을 이슈만 자율규제하고, 이보다 규제 범위가 광범위한 독과점 이슈는 사전 규제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동안 공정위가 카카오모빌리티·구글 등의 독과점 이슈에 대해 현행 공정거래법으로 처벌을 한 전례가 있는만큼 플랫폼법이 별도의 이중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과기부가 추진하는 규제 방안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중복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부처간 논의도 미진하다는 지적도 크다.

유병준 서울대 교수는 "공정거래법 등 현재 규제도 부족하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서 이를 더 강화하는 것은 국가 부 창출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고,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차나 삼성전자가 시장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사전규제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플랫폼만 특별히 규제하는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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