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피습과 소방헬기 이용 논란, 재판지연. 법과 원칙이 아수라에 빠진 대한민국의 운명이 4월 총선에서 갈린다. 국가란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되는가? 청교도 혁명으로 1649년 잠시 공화국이 된 영국에서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년 출간)』 17장을 통해 국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나는 나 자신을 통치하는 권리를 합의체(Assembly)에 양도한다. 조건은 너도 양도하는 것이다. 이 상태를 국가(Commonwealth)라고 부른다. 인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지상의 신 리바이어던은 이렇게 태어난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를 끝내려면 국가(리바이어던)에 권리 양도를 규정한 법을 구성원 모두 지켜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런 사회계약 국가론의 법치 개념은 고대 아테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악법도 법". 소크라테스는 과연 이 말을 했을까? 법치의 대명사, 소크라테스를 이해하면 2024년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길이 보인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 Sokratous)』, 『파이돈(Phaidon)』, 『크리톤(Kriton)』 3권의 저서(천병희 번역, 도서출판 숲 출간)를 토대로 소크라테스의 법치론에 대해 살펴본다.
◆ 2천5백년 된 아테네 소크라테스 감옥
소크라테스의 숨결을 어디에서 느껴볼 수 있을까? 그리스 수도 아테네를 찾으면 다행스럽게도 소크라테스 이름을 가진 유적을 하나 만난다. 아테네의 최중심인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서쪽에 해발 147m의 야트막한 야산이 제법 널찍하게 펼쳐진다. 뮤즈의 언덕(Hills of Muses)이다. 뮤즈는 제우스의 딸 9명 자매다. 학문과 예술을 수호하는 여신이다.
B.C5세기 이후 그리스 문명의 학문, 문학, 예술을 상징하는 도시 아테네 한복판에 솟은 야산의 이름으로 잘 어울린다. 뮤즈의 언덕 꼭대기 동쪽편에 필로파포스의 기념물이 있어 필로파포스의 언덕이라고도 부른다. 필로파포스(65년-116년)는 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 콤마게네 왕국의 왕자로 2세기 초 아테네에 살았다.
뮤즈의 언덕 소개 표지판에 명시된 20개의 그리스로마 유적 가운데 소크라테스 감옥이 단연 탐방객의 시선을 끈다. 소크라테스 감옥은 뮤즈의 언덕 입구에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아테네 특유의 돌산을 깎아 만들었다. 쇠창살로 입구를 막아 놨다. 내부 깊이는 10여m 정도다. 동굴 감옥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당시 아테네 동굴 감옥 묘사와도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을까? 이 동굴 감옥은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소크라테스 감옥이라고 알려진 것은 200년 조금 넘는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역사가 토마스 휴스(T. S. Hughes)가 아테네를 여행하고 1820년 이곳을 소크라테스 감옥이라고 이름 붙인 뒤부터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감옥은 다른 곳?
아테네시는 이곳을 소크라테스 감옥이라고 명명해 안내판을 만들어 붙였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당시 전쟁 포로 같은 죄수들을 동굴 감옥에 가뒀지만, 소크라테스 같은 고위 사상범은 이렇게 험한 곳에 수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일까? 힌트는 있다.
플라톤의 또 다른 저서 『파이돈』에 소크라테스의 제자 파이돈이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감옥이 법정에서 그리 멀지 않다". 법정이 어디인지 알면 어렵지 않게 감옥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B.C5세기-B.C4세기 아테네 민주정치 황금기에 주요 관공서는 고대 아고라에 자리했다. 아크로폴리스 북쪽 사면 아래 아고라를 찾으면 당시 관공서터가 잘 발굴돼 탐방객을 맞는다.
법정 헬리아이아(Heliaia)터도 마찬가지다. 2천5백년 전 아테네 민주정치와 사법제도를 웅변한다. 헬리아이아에서 가까운 곳에 국가감옥터로 추정되는 장소도 있다. 플라톤의 『파이돈』 언급에 근거하면 멀리 떨어진 뮤즈의 언덕 동굴 감옥보다 아고라 법정 근처 국가 감옥이 사실에 더 부합해 보인다.
◆소크라테스 "죽음을 피하기보다 비열함을 피하기 어려워"
소크라테스는 왜 감옥에서 독배를 마신 것일까? 소크라테스 재판은 B.C399년 열렸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상과 언행, 특히 재판 기록은 제자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저술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재판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명언 하나를 소개하고 넘어간다.
소크라테스는 재판과정에 자비를 구해 목숨을 건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켰다. 사형평결을 받고,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피하기보다 비열함을 피하기가 어렵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들은 살러 가지만,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 아무도 모른다"
비열함이 일상화된 사바세계에 비열해지기보다 죽음을 받아들였던 소크라테스의 울림이 크다. 죽음을 택한 소크라테스는 사형평결 뒤, 집행까지 기간에도 탈옥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마저도 정면으로 거부한다. 이 내용은 플라톤의 『크리톤』에 잘 묘사된다.
◆"악법도 법이다" 일본학자가 1930년대 만든 조어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절친이다. 살림살이가 넉넉했다.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소크라테스를 감옥에서 빼내 살리려 애썼다. 크리톤은 사형 집행 전날 소크라테스를 면회하며 눈물로 마지막 호소를 쏟아낸다. 자신은 물론 테베의 심미아스를 비롯해 외국인까지 소크라테스를 위해 많은 돈을 쓸 준비가 돼 있고, 아테네를 벗어나 외국으로 가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조치할 테니 눈 딱 감고 자신의 의견을 따르라고 설득한다.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악법도 법'이다? 그러니 지켜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법치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 '악법도 법이다'는 일본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1930년대 출판한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 준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만들어 낸 조어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크리톤』의 원문을 통해 법치 정신이 결연하게 묻어나는 소크라테스의 신념과 원칙을 들여다 본다.
◆소크라테스, 법을 지켜야 시민약속으로 만든 국가 존립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먼저 "어떤 경우에도 불의를 저지르면 안되고, 정당한 것을 약속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운을 뗀다. 이어 법률과 국가가 다음과 같이 묻는다고 들려준다. "그대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탈옥을 시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우리 둘, 법률과 국가를 파괴할 작정인가? 나라의 법정에서 선고된 판결이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하고 개인에 의해 무효가 되고 훼손된다면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성인 소크라테스는 '법'에 '악'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다. 대신 법을 지켜야 시민약속으로 만든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 프레임의 원칙만 또렷하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2천여년 흐른 뒤, 1651년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국가 존립조건과 일맥상통한다. 너와 나의 권리를 국가에 넘기고 만든 법을 지키자는 현대 사회계약 국가론의 뿌리는 소크라테스다.
▲"전쟁터에서도 법정에서도 조국의 명령에 복종해야"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않고 탈옥을 간곡히 호소하는 절친 크리톤을 소크라테스는 "전쟁터에서도 법정에서도 그 밖의 어느 곳에서도 조국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라며 거꾸로 설득한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마지막으로 담담하게 읊조린다. "법률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서 나는 다른 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네. 크리톤! 법률이 권하는 대로 하세. 신이 우리를 그쪽으로 인도하네" 플라톤의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이 말로 끝을 맺는다.
다음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다. 그가 이원적(二元的) 인식론(認識論)에서 설파한 대로 육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정신의 영원한 자유를 얻는다. 비열함에 기대 법을 어기며 법치를 아수라에 던져 버리는 정치 세태와 가짜뉴스, 위선에 죽비를 드는 성인의 삶이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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