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누각(砂上樓閣).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란 뜻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아 오래가지 못할 일이나 상태,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언뜻 화려해 보이는 건물이라도 모래 위에 지으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고, 내버려두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른다.
최근 축구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추춘제'다. 추춘제는 가을에 시즌을 시작, 이듬해 봄에 끝나는 방식. 한국 프로축구 K리그는 봄에 시작해 가을에 끝나는 '춘추제'로 운영된다. 이웃나라 일본 프로축구 J리그도 마찬가지다.
최근 J리그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다. 2026-2027시즌부터 추춘제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유럽 주요 리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개편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와 궤를 같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J리그 이사회가 공식 성명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2026시즌 J리그는 8월 개막해 12월 둘째 주까지 경기를 소화한 뒤 이듬해 2월까지 겨울 휴식기를 갖는다. 이어 경기를 재개, 5월에 시즌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세계 축구 흐름에 맞춰 추춘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추춘제가 도입되면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하기가 좀 더 쉬워진다. 바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일정상 2월부터 토너먼트가 시작되는데 K리그 구단들은 시즌 초반이 아니라 중반에 참여해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
특히 유럽 무대 진출은 선수 개인뿐 아니라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중요한 일이다. 유럽 프로축구 시즌이 끝나는 여름엔 K리그가 한창 진행될 때다. K리그 구단들이 주축 선수들을 놓아주는 게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 시즌이 끝난 뒤 유럽의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릴 때 도전하면 낯선 리그에 바로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추춘제를 도입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겨울에도 축구를 해야 하는데 추운 날씨 속에선 잔디를 관리하기 힘들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인한 인조 잔디를 깔거나 겨울 휴식기를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관중 수가 감소할 수 있다는 난관에 봉착한다. 리그에 대한 관심이 줄면 수익뿐 아니라 경기력도 떨어진다.
추춘제를 도입, 조기에 안착시키려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는 게 먼저다. 그래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을 면한다. J리그는 지난달 추춘제 전환 발표에 앞서 마케팅과 경영, 축구, 다설 지역까지 4개 분과회를 운영해 에어돔 설치 등 난방 대책부터 회계 연도 변경 등 경영 시스템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검토하고 전환 비용도 추산했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번에 우승하면 안 됩니다." 최근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해 화제를 모았다. 64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은 15일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손 씨도 한국의 우승을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하면 그 결과만 오래 우려먹을 것이고, 한국 축구가 병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체계적인 투자 부족, 기본기 습득보다 승패에 매몰되는 행태 등 많은 문제점이 이번 우승으로 묻힐 수 있다는 얘기다. 시간이 걸려도 추춘제 도입 문제처럼 밑그림부터 제대로 그려야 한다. 이는 비단 축구 내지 스포츠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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