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가 시작되면, 지나간 해를 결산 및 분석하고 다가온 해를 예측하는 소식과 기사들이 쏟아진다. 특히 관심 분야와 관련된 이러한 소식들은 현재의 경향을 파악하고 흐름을 읽을 수 있기에 저절로 눈이 가게 된다.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 시장을 살피는 필자는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대상인 미술 작품을 생산해 내는 예술가(Artist), 즉 작가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진흙 속의 진주라는 말이 있듯, 가능성 있는 새로운 작가를 찾아내고 그 작가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보람차고 흥미진진한 일이다.
미술 전문매체인 '아트넷(Artnet)'에서는 2023년 미술계를 돌아보며 한 해 동안 두각을 보인 8인의 작가를 선정 및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3년에도 추상회화가 강세를 보였고, 신체의 표현과 더불어 내면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활기찬 작품들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미술의 범주를 넘어 오페라, 패션 등 다양한 예술을 선보인 작가들이 주목받았고, 확장된 회화, 몰입형 설치작업 등 복합적인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감각을 자극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넨기 오무쿠(Nengi Omuku, b.1987)는 직물과 그림을 결합해 현실과 심리적 공간을 이야기한다. 레이첼 존스(Rachel Jones. b.1991)는 영국 출신으로 인간이 서로 얽힌 모습과 닮은 신체 추상화를 보여주며, 크리스티나 퀄스(Christina Quarles, b.1985)는 미국 출신으로 인체의 분해 및 조합을 통해 욕망과 불안을 상징한다. 독일 출신의 제시 달링(Jesse Darling, b.1981)은 2023년의 터너상 수상자로 성별과 장애 등 인체 한계의 취약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조각 작업을 주로 선보인다.
영국 출신의 미카엘라 이어우드-댄(Michaela Yearwood-Dan, b.1994)은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해 화려하고 소용돌이와 같은 스트로크로 화면을 채우며 사회적 및 개인적 정체성, 사랑, 상실 등의 주제를 담는다. 도론 랭버그(Doron Langberg, b.1985)는 다채로운 색채의 인체 표현 속에 퀴어적 감성을 녹여내고, 말레이시아 출신의 영국인인 맨디 엘 샤예(Mandy El-Sayegh, b.1985)는 세상의 자료들을 축적하고 이를 함축해 시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 출신인 이미래(Mire Lee, b.1988)도 리스트에 올랐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조각적 선혈과 강모가 뚝뚝 떨어지는 지옥과 같은 모습의 작품을 선보여 두각을 보인 그는 신체 부패와 운동적인 요소를 갖춘 설치 작업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몰입과 충격을 준다.
이들이 모두 최근 몇 년 사이 주목받고 있는 초현대 미술(Ultra-contemporary)에 속하는 젊은 작가들이며, 1명을 제외하고는 여성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출신 국가, 성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개성 강한 자신만의 예술 정체성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더불어 이 중에 한국 작가가 속해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해외를 무대로 두각을 보이는 한국 작가들이 좀 더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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