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사찰이 대개 산허리의 1/3 지점에 위치하고, 암자는 개략 2/3에서 4/5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pyramid)는 파라오(Pharaoh)들의 영생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미이라가 보관되는 묘실이 지상1/3 지점에 있고 기도실이 2/3 지점에 있다. 사막지대에 인위적으로 산을 조성한 것이 피라미드인데 우리나라는 자연 피라미드인 산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세계 문화유산인 영주 부석사에 다녀왔다. 사찰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12개가 있는데 그 중 5개가 부석사에 있다. 일반 사찰은 밖에서 보면 잘 안보이나 내부에 넓은 공간인 명당이 있지만 부석사의 배치구조는 특이하다.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일망무제(一望無際) 계전만리(階前萬里)는 부석사에서 바라본 전경을 두고 한 말이다.
◆일망무제의 전경이 황홀지경
소백산 봉황산에서 바라보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부석사는 특이하게도 산의 2/3지점인 일반 사찰의 암자가 있는 지점에 위치하여 전망이 탁월하다. 부석사의 대문 안양루에는 그 경관을 보고 읊은 김삿갓의 유명한 시가 있다. 과거에는 안양루를 개방하여 보았지만 지금은 누각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평생미가답명구(平生未暇踏名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금등안양루(白首今登安養樓) 백발이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강산사화동남열(江山似畵東南列)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여평일야부(天地如萍日夜浮) 천지는 부평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풍진만사홀홀마(風塵萬事忽忽馬) 지나간 모든 일이 말타고 달려온 듯
우주일신범범부(宇宙一身泛泛鳧)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 치네
백년기득간승경(百年幾得看勝景) 백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무정노장부(歲月無情老丈夫) 세월은 무정하여 이 내 몸은 늙어 있네
불교 화엄종의 개조인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이곳에 자리잡게 한 풍수적 안목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입구에서 안양루를 통해 바라본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건축미의 극치이다. 공포불은 안양루의 공포와 공포 사이가 밑에서 치켜 보았을 때 불상의 모습을 나타내는 현상이다.
◆공포불(貢包佛)과 현현불(顯顯佛)의 불타세계 표현
지붕을 받쳐주는 공간을 공포라 하는데 공포 간의 공간으로 부처님 여섯 분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안양루 뒤의 무량수전의 갈색 벽이 마치 법의를 걸친 모습으로 보이게하여 불타의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 공포 사이로 비추어지는 부처라하여 공포불 또는 현현불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가람의 불상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부석사의 불상은 서방정토를 다스리는 부처인 아미타여래상이 정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일설은 경주에 있는 왕을 바라보는 호국불교 사상에 기인), 조화와 균형보다는 지형적 특색을 고려한 배치는 파격의 연속이다.
우백호가 약한 것은 나무를 심어 삭풍을 막았고 안양루(안양은 극락을 뜻함)의 지붕은 넓은 공간을 향하여 날아가는 학의 날개를 형상화하였으며 공간 배치를 절묘하게 해놓았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신도들이 찾아가기 힘들게 산속에 몰아넣었지만 부석사는 도시 속에 사찰이 위치 했을 때에도 이곳에 자리했다.
사찰은 호국사찰, 비보사찰, 원찰로 나눈다. 왕실에서 시주를 하거나 사찰 중창시 재정지원을 한 경우 용마루 가운데에는 푸른 기와장으로 이를 표시했다. 무량수전의 용마루 한 가운데에도 왕실의 상징인 푸른 기왓장이 얹혀있다.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더불어 중국으로 화엄종을 공부하러 가다가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먹은 사건으로 일체유심조를 외치며 발길을 돌렸고 의상대사는 당나라 장안의 종남산 지장사로 가서 지엄대사 밑에서 수학하고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완성하고 왔다. 법성게는 진리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의 수행 완성에 관한 것과 남의 수행을 어떻게 이롭게 하느냐 하는 것, 그리고 수행 방편과 공덕에 관해서 설하였다.
이 법계도는 해인도(海印圖)라고도 하는데 화엄사상을 210자로 축약한 것으로 668년 7월에 완성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의상이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오기 위해 기도를 했다. 십 년 수도가 헛되지 않았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염원했다. 그리고는 불경을 태웠지만 타지 않고 남은 210자를 7언율시로 표현한 바 이를 법계도라고 하는데 신비감을 더한 전설에 가깝다.
◆화엄사상의 본산답게 화(華)자로 배치된 건물 구조
이 법계도는 절 만(卍) 자로 되어 있는데 '법의 성품 둥굴어서 두 모양이 없다'는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 無二相)'으로 시작해 '옛부터 움직이지 않는 이가 부처'라는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로 끝난다. 가운데에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이라는 '귀절은 만물을 키우는 단비 허공에 가득한데 중생은 자기 그릇 따라 이익을 얻는다'. '하늘이 내리는 복은 자기 그릇에 따라 적게 받기도 하고 많이 받기도 한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법성게의 진수는 '하나 속에 여럿 있고 여럿 속에 하나있다'는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과 '하나가 전체이며 전체가 하나'라는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속에 다 녹아 있는 듯하다. 부석사는 화엄사상의 본산답게 빛날 화(華)자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우주의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화엄사상을 표현한다.
부석사에는 선묘라는 여보살의 사당이 있다. 이 여인은 의상이 당나라 유학시 사랑을 고백했으나 중생 구제를 위해 공부하러 온 신분으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하자 용으로 변해 호법용이 되었다는 고사도 전해온다. 법당 앞 석등에서 아미타여래좌상까지 땅속에 돌로 된 용이 있다고 탐사방송 보도가 있었는데 풍수지리를 고려한 배치일 가능성이 더 크다. 부석사 절경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지만 단풍이 드는 시절이 그 중 가장 멋지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 은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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