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시들어 버린 '풀뿌리' 민주주의, 점입가경 대구 기초의회

윤수진 사회부 기자

윤수진 사회부 기자
윤수진 사회부 기자

"지방의회 없애버리세요."

지난해 썼던 기초의회 기사에 달린 인기 댓글 중 하나다. 이 댓글은 반대 하나 없이 130명에게서 공감을 얻었다. 기초의회를 비판한 다른 기사에서도 반응은 비슷하다. '규모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온건파와 '전원 사퇴하길 바란다'는 강경파로 나뉠 뿐, 모두 '지방의회 무용론'을 외친다는 점에서 같다.

지난 한 해 동안 대구 기초의회가 남긴 족적을 보면 이런 비판을 단순히 '일부 누리꾼의 비난'으로 치부해 흘려들을 수 없다. 지난해 기초의회 난맥상의 시작은 중구의회였다. 공무원에게 자료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갑질, 서류 무단반출 논란이 불거지며 구의원 두 명이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이를 시작으로 중구의원들은 줄줄이 비위 의혹에 휘말렸다. 지난해 4월 이경숙 구의원이 남구로 주소지를 옮겨 의원직을 상실했고, 배태숙 부의장은 7월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유령회사를 설립해 중구청과 1천680만원 상당의 수의계약 8건을 맺은 것으로 나타나 30일 출석정지 징계를 받았다. 권경숙 구의원도 중구청과 불법 수의계약 논란으로 의회에서 제명됐다가, 최근 법원에 낸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다시 복귀한 상태다.

중구의회뿐 아니라 수성구의회도 잇따른 잡음이 일었다. 수성구의원 11명은 지난해 3월과 4월 유럽과 일본 해외 연수를 다녀왔으나, 외유성 일정이 많고 출장 보고서도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어 5월엔 차현민 구의원이 동료의원을 향해 욕설하고 물건을 집어던진 사실이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고, 11월엔 배광호 구의원이 경북으로 주소지를 이전한 사실이 드러나 의원직을 잃었다. 최근엔 황혜진 구의원이 의회 내방객에게만 제공할 수 있는 기념품을 관변단체에 전달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검찰에 송치됐다.

자치구‧군 의장들이 모인 의장협의회에서도 대구 시민들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5월 매일신문 정보공개청구 결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대구시의장협의회에 배정된 예산은 모두 2억7천여만원이었으며 이 중 1억6천만원(60.7%)가 소속 의장들 출판기념회와 명절 선물 등 쌈짓돈처럼 사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의전 차량 교체 논란도 이미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7월 서구청과 서구의회, 북구청과 북구의회가 각각 의전 차량을 바꾸기 위해 1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책정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구청과 구의회는 모두 의전차량 교체 계획을 취소했다.

이 문제는 동료 기초의원들 사이에서도 '힘 빠지는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한 구의원은 "저렴한 친환경 차량도 많은데 굳이 고급 승용차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가뜩이나 기초의회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열망으로 기초의회가 부활한 지 어느덧 30년이 훌쩍 지났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해산했던 기초의회가 이젠 시민들에게서 '없어져야 한다'는 뭇매를 맞고 있다.

시든 풀뿌리에 물을 주는 시민은 결코 없다. 기초의회 의원들이 "법령을 준수하고 주민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던 임기 초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초의회 '무용론'을 '실용론'으로 꽃 피울 수 있는 기회는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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