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 운동권 정치인이 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 3명 중 2명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오히려 같은 86세대에서는 더 높게 나타난다. 진보층에서도 절반이 공감한다. 가히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이 시대 과제가 된 것이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 대구 서구 평리동에 살면서 중구의 서문시장 옆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다녔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할 때면 어김없이 서문시장을 가로질렀다. 낮 시간에 인파로 붐볐을 넓은 시장터는 오후 11시면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장소로 변한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바닥에 초라한 좌판을 깔고 장사하는 분들이 계셨다.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깃들었다. 밤마다 서문시장을 지나며 다짐했다. '장래 정의로운 법관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자,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깨끗하고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자'라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고시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어쩌다 '80년 광주'를 알게 되었고, 알게 된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운동권이 되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 생각에 고시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시 공부도 하고 학생운동도 할 수는 없었다. 방황했다. 결국 고시 공부를 포기했고, 학생운동에 매진했다.
이 같은 과정은 비단 필자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시위하다 감옥까지 갔던 모두가 다 비슷했다. 선배뻘인 86세대부터 그랬다. 그런 운동권들이 민주화가 달성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이 된 지금, 왜 '운동권'이 '특권'이 되어 '퇴진'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에 직면했을까.
국민들은 그 이유를 쉽게 알고 있다. 86운동권의 맏형이라 자처하던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 대표 선거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뿌리고도 '축제를 즐긴 것뿐인데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도 '하이에나의 먹잇감이 되어 사냥을 당했다'고 하고, 재판 중인데 총선에 나가 정치적 명예 회복을 하겠다고 한다.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은 고작 '성남시 지역 토착 비리 혐의자'에 불과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키겠다고 철옹성을 쌓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사람들이 왜 범죄 혐의자를 '목숨 걸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게 된 걸까? 국민들은 이 모순적 현실을 날마다 목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어 야당이 된 후 처음 민주당 원내대표를 뽑는 선거였다. 후보로 나온 86운동권 총학생회장 출신 국회의원은 정견 발표의 일성(一聲)으로 "예상되는 문재인·이재명 수사를 반드시 막겠다"고 외쳤다. "모든 걸 걸고 싸우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명색이 공당의 원내대표가 모든 걸 걸고 할 일이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의 수사를 막는 것이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86 좌장' 격이라 하는 다른 국회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 나와서는 이 대표를 지키는 게 총선에서 승리하고 민주당을 지키는 것이라고 외쳤다. 역시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 운동권 정치인은 20대에 이미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86 레밍'이다.
30대에 국회의원의 상징인 금배지를 '민주화 훈장'의 위에 달았던 이들. 이들이 그 후 20여 년 동안 몇 번의 국회의원을 하며 점점 이율배반적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국민들은 지켜봐 왔다. 환멸이 극에 달해 이제는 퇴장하라고 레드카드를 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던 86운동권 정치인은 이 레드카드에 "함부로 돌 던지지 마라"고 성을 낸다.
그러나 국민을 계속 가르치려 하기보다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운동권 정치인 그네들만 민주화를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동시대에 함께 싸웠던 86세대마저도 3명 중 2명 이상이 이제 그만 퇴진하라고 하는, 그 문드러진 가슴들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그 상처를 아주 잠깐이라도 떠올려 보았는가. 그들 가슴속의 소중한 것을 누가 강탈하고 유린하고 배반하였는지, 누가 함부로 돌을 던져 깊은 생채기를 냈는지, 이제는 스스로 무소불위 특권이 되어 어떻게 퇴행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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