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소유분산기업? 민족기업 아니었던가

최경철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최경철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기계공업의 육성이라든지, 또는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조선공업, 자동차공업 또는 건설업에 있어서 철강공업은 가장 근간이 되는 기간산업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국방상에 있어서 군수산업을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철강공업을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됩니다…."(1970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 착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 연설)

박 대통령은 포항제철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꿰뚫고 있었다.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을 일으켜야만 기계·조선·자동차·건설 등의 산업 성장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박 대통령은 갖고 있었다. 공산 진영과 대치 중인 상황까지 고려할 때 철강산업은 자주국방을 담보할 군수산업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게 박 대통령의 신념이었다.

기계·조선·자동차산업 강국에 올랐고 K-방산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방위산업을 만들어 내면서 전 세계가 우리 무기를 주목하는 오늘날에야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탁 치며 "박정희는 선각자였다"라고 외친다. 하지만 일관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포항종합제철 건립 시도를 박 대통령이 했을 때 세계가 콧방귀를 뀌었고, '혈맹' 미국까지 펄쩍 뛰며 안 된다고 했다.

1967년 6월, 종합제철소 부지로 포항이 선정되고 이듬해는 제철소 건설 및 운영 회사가 될 포항제철주식회사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무리한 시도"라고 주장하는 미국 등의 반대 여파로 해외 차관 확보가 이뤄지지 못했고 제철소 건립은 돈이 없어 자칫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 박 대통령은 대일청구권자금을 전용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일본과의 마라톤 협상 끝에 마침내 1969년 말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한일 간 협약 체결을 성사시켰다.

포항제철소 건립은 천문학적 자금이 들어가는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었기에 정부의 강력한 지원 없이는 추진되기 어려웠다. 3년여에 걸친 포항 1기 공사에만 해도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사비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1천204억원)이 들어갔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를 보면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에 투입된 13조8천546억원 중에서 47.7%가 정부 지원에 의한 재정 출자·정책 금융·외국 차관의 형태로 조달됐다.

포스코그룹의 태동 역사를 길게 써 봤다. 포스코의 디딤돌을 놓고 초대 회장이 됐던 고(故) 박태준 회장의 말을 빌리면 포스코는 대일청구권자금이 투입된 만큼 선조들의 핏값으로 만들어졌고 이에 박 회장은 포스코를 민족기업이라고 명명했다. 학계에 따르면 대일청구권자금 집행 주력 사업이 포항제철 설립이었고 추가적 정부 재정·세제 지원도 엄청났기에 박태준의 표현은 부풀림 하나 없이 정확한 것이다.

포스코그룹의 새 회장 선출을 앞두고 소유 구조가 여러 주주로 분산돼 있는 포스코를 '소유분산기업'이라고 칭한다. 주주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포스코는 지난 역사를 헤아려 보면 이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깊은 뿌리와 가치를 지닌 기업이다. 박정희의 민족중흥과 박태준의 제철보국 정신이 서려 있는 민족기업인 것이다.

본사 주소지만 달랑 포항에 두고 본사 기능은 모두 서울에서 작동하는 위장 전입 기업이라는 의심이 포스코에 붙어다닌다. 최근에는 해외 호화 이사회 논란이 불거져 경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뿌리가 마른 식물은 시들어가는 것이 운명이듯, 뿌리를 소홀히하는 기업은 결코 잘될 수 없다. 포스코가 민족기업이라는 창업정신을 잊어버린다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포스코는 창업 역사를 매일 아침마다 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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