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피카소의 시계를 찬 여인

정연진 독립큐레이터

정연진 독립큐레이터
정연진 독립큐레이터

2023년 한 해 동안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도 이름은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의 '시계를 찬 여인'(1932)이다.

화려한 파란색 배경을 뒤로 하고 안락의자에 한 여성이 앉아있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손목 위에 시계가 돋보인다. 이 작품은 11월 8일 소더비 뉴욕 이브닝 경매에서 약 1억4천만달러(약 1천829억원)에 낙찰됐다. 그리고 2015년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1955)이 약 1억8천만달러에 낙찰된 기록에 이어 경매를 통한 피카소의 역대 두 번째로 비싼 작품이 됐다.

피카소는 자기 연인을 주로 작품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작가의 생애에 대해 다루다 보면 그의 여성 편력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 부분에서 많은 이들이 분노하면서도 인간 피카소의 매력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한다. 2023년 최고가를 기록한 '시계를 찬 여인' 속 주인공 역시 그의 연인 마리 테레즈 월터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45세의 나이에 파리에서 17세이던 마리를 만났고 그 사이에서는 마야라는 딸도 태어났다. 하지만 당시 그는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한 상태였다. 그들의 나이 차와 복잡한 여자관계에 분노가 일겠지만, 미술사에서는 그녀를 피카소의 '황금 뮤즈(Golden Muse)'라고 꼽을 정도로 그가 그녀를 그린 작품들은 찬사를 받는다.

당시 마리에게 영감을 받은 피카소의 화풍은 자유분방해졌다. 이 시기 그가 한 작품에서 아내 올가를 절규하며 남성을 칼로 찌르는 괴물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면, 마리를 모델로 한 '꿈'(1932)에서는 그녀를 화사하고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애정의 차이를 보였다. 그녀는 피카소 초현실주의의 뮤즈였으며, 그의 작품에서 항상 둥그런 모양과 밝은 색상으로 드러났다.

발랄한 작품의 분위기처럼 피카소와 마리 테레즈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면 좋았겠지만, 피카소는 딸이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어 이후 '우는 여인'의 모델이 되는 도라 마르와 사랑에 빠지고, 그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2명의 연인이 더 그의 삶과 작품 속에서 등장한다.

피카소의 연인들이 바뀔 때마다 그의 작품도 다양해지고 풍부해졌으며, 예술에 대한 열정도 더욱 타올랐다. 이렇게 사랑이 그의 예술의 원동력이 되어준 것은 틀림없지만, 잦은 환승 연애의 주인공이자 일반적인 상식과 도덕과는 동떨어진 연애사를 가지고 있기에 그는 충분히 나쁜 남자라고 불릴 만하다. 그의 탁월한 예술성은 인정하고 찬사 받을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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