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우린 그렇게 싸우기 싫다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이번에도 그랬다. TV는 연말 시상식을 하고 자정에는 제야의 타종을 보여주고 연이어 새해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해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10대 가수를 뽑고 다시 가수왕을 가려 색종이를 뿌려대던 그때부터 그랬다. 우리네 일상도 그렇다. 1월이면 면면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인사를 건넨다. 매년 반복됨에도 시들해지는 법이 없다.

방송은 출연진이 바뀌기 일쑤지만 늘 보던 가족, 친구, 동료임에도 새로이 서로를 보고 더 정성스레 대한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처음 맞는 새해인 양, 주고받는 덕담의 정성도 줄지 않을 것이다. 올해 끝엔 다시 송년회를 할 테고 다음 날엔 그날이 그날임에도 설레며 신년회를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도 무언가를 소망하며 또 다른 희망을 찾아낼 것이다.

대개의 우리는 그만큼 대단한 존재들이다. 기쁜 일이 생기기를, 좋은 세상이 오기를 지치지 않고 바란다. 게다가 올해는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면 좋을지 결정하는 의식(儀式), 총선이 돌아온 해다. 내가 사는 세상을 내 바람대로 나아가게 할 권리, 그 우선권이 주어진다. 적어도 4월이 되기까지는 내게 뭔가를 요구만 하는 것 같던 세상이 도리어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고 물어올 것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이벤트를 앞에 두고도 사람들의 얼굴이 밝지가 않다. 고만고만한 날, 작은 일에도 설레던 사람들이 그런다. 오히려 지치고 힘들어한다. 선거라는 말이 나오면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기까지 한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식당에서도 목욕탕에서도 뉴스 채널은 '기승전총선'에 온통 정치 이야기이고 집에 와도 TV만 켜면 같은 게 나온다.

이런저런 뉴스의 양으로만 보면 이미 총선을 몇 번은 치른 듯하다. 하지만 그 많은 영상과 그 많은 텍스트와 그 많은 사진에 '우리'는 없다. 이번엔 우리 차례인데, 4년에 한 번씩 가지는 우선권이 있는데도 그렇다. 저들만의 리그, 저들만의 이전투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온갖 매체들은 정말이지 쉬지 않고 성실하게도 보여주고 퍼다 나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탈당하고 '개혁신당'에 이르기까지, 이낙연 전 총리가 '새로운미래'를 출범하기까지, 그 별것 없는 과정을 지루하도록 보여줬다.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상식'이 만든 '미래대연합'과 금태섭의 '새로운선택', 양향자의 '한국의희망'이 얼마나 세력을 키울 수 있을지, 류호정은 또 뭐가 그리 당당한지도 세세하게 전한다.

그리고 얼핏 봐도 그냥 권력 다툼인 것을 무슨 이념과 가치에서 비롯된 정치적 노선 투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헷갈리게도 한다. 심지어 이들 중 누가 누구와 손을 잡고 어느 쪽과 합칠 것인지, 또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누가 누구에게 버림받을 것인지 사실과 사실일 것 같은 뉴스, 그리고 사실이기를 바라는 뉴스까지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시사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이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디로 갔는지를 곱씹으며 의미를 분석하고 그 심리까지 헤아리느라 여념이 없다. 일생토록 쌓은 경륜과 지식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들의 무성한 말에도 그 중심에는 여전히 '우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함께 싸우자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이랬다저랬다 편먹고 치고받는 건 그렇다 쳐도 상대 당을 향한 혐오와 증오는 거의 2차 세계대전의 독·소 절멸전쟁을 연상케 한다.

정치란 인간이 긴긴 세월을 통해 깨달은 공존의 기술이다. 결국 함께 살아야 모두가 살 수 있고 계속해서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정치인이고 그 일을 앞장서 할 사람을 뽑는 것이 선거다.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싸우겠다고 한다. 야당의 인사들도 어떻게든 싸워서 이기겠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여당을 지지하든 야당을 지지하든 싸우지 않는다. 얼마든지 서로 챙겨주고 같이 밥도 먹고 걱정도 해준다.

혼자 싸우시라. 내가 처칠이 아니고 여기에 나치가 없듯이 우린 그렇게 싸우기 싫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싶고 이왕이면 덜 싸우며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러니 비록 지치고 힘들어도 4월 그날이 오면 투표는 꼭 하자. 그나마 따뜻한 사람, 그래도 '함께 살자'는 사람은 찾아보면 있기 마련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