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 너도 할 수 있어"…영양사 국가시험 합격한 중국인 유학생 ·70세 늦깎이 학생 눈길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전공 재학생
공부비법은 선택과 집중, 무한 반복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 식품영양전공 강영옥(좌,70) 씨와 공링한(우,23) 학생. 계명문화대 제공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 식품영양전공 강영옥(좌,70) 씨와 공링한(우,23) 학생. 계명문화대 제공

배움에는 제한이 없다. 나이, 성별, 국적 어느 하나도 배움에 있어서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 식품영양전공이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해 냈다.

최근 발표된 제47회 영양사 국가시험에서 많은 재학생들이 합격 명단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유독 2명의 학생이 눈에 띈다. 바로 만 70세 최고령 학생인 강영옥 씨와 중국 외국인 유학생 공린한 씨다.

강 씨는 이번 영양사 국가시험 최고령 합격자이며 공 씨는 계명문화대 최초로 외국인 유학생 신분으로 영양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학생이다.

식품영양학은 한국인이 배우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각종 어려운 용어들이 많은 학문이다. 특히 강 씨와 공 씨에게는 해당 학문의 문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두 학생이 당당히 시험의 관문을 넘어섰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두 학생에게 직접 들어봤다.

공링한 씨가 속한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 식품영양전공 학생과 교수님들. 본인 제공
공링한 씨가 속한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 식품영양전공 학생과 교수님들. 본인 제공
공부를 열심히 한 탓에 공린한 씨의 연필이 다 닳았다. 본인 제공
공부를 열심히 한 탓에 공린한 씨의 연필이 다 닳았다. 본인 제공

◆공부 비법은 '선택과 집중'

공링한(23) 씨는 2021년 중국 산둥반도에서 대구로 유학 왔다. 처음부터 식품영양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계명문화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던 그는 함께 공부하며 알게 된 캄보디아, 멕시코 친구들의 영향으로 식품영양조리학부로 진학하게 됐다.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는 식품영양전공과 조리전공으로 나뉜다. 공 씨의 첫 전공은 조리 전공. 고향 중국 요리를 즐겨 해 먹던 공 씨는 당당히 조리 전공에 나섰지만 실전은 그에게 어렵기만 했다. 칼질이 서툴러 요리할 때마다 부상이 잦자 실습수업에서는 늘 설거지만 담당해야했다.

이 길은 아니라는 생각에 빨리 돌아섰다. 조리전공에서 식품영양전공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공 씨는 예비 영양사를 향한 길을 한 발짝 내디뎠다.

하지만 식품영양전공도 만만찮았다. 특히 영양학 수업 시간에서 나오는 각종 영양, 생물 용어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공 씨는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수업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한 뒤, 영어를 다시 중국어로 번역해 스스로 내용을 납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공 씨는 "식품영양전공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수업 내용 이해가 잘되지 않으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내용을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한 교수님께 너무 감사해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공린한 씨의 공부 노하우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여느 대학생과 달리 공 씨는 학과 수업 시간에 무섭게 집중해 공부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전공 과정 중 '펫 푸드' 등 처음엔 크게 와닿지 않은 과목도 있었다. 하지만 공 씨는 이 역시 본인의 공부로 만들어버렸다. 배우기 싫었던 과목임에도 수업에 열중하다 보니 점점 흥미가 생겨났고 나중엔 펫 푸드 자격증까지 따냈다는 게 공 씨의 설명이다.

실습 중인 공링한 씨. 본인 제공
실습 중인 공링한 씨. 본인 제공

2년간의 학습을 마쳤지만 영양사 국가시험에 도전하기는 선뜻 쉽지 않았다. 한국의 자격증 시험이 낯설기도 했을 뿐더러 외국인이 한국의 국가시험을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시험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교수님 덕분이었다. 교수님은 공 씨의 공부를 잘 이끌어준 반면 그가 지역 곳곳 기관에 영양사 실습에 나설 수 있도록 이리저리 뛰어다닌 고마운 분이었다.

공 씨는 "교수님이 시험 당일 새벽부터 고사장에 나와 학생들을 응원해줬다. 자격증 취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공 교수님들 덕분이다. 시험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합격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시험 당일까지도 불안했다"라며 "늘 응원해주는 교수님 덕분에 시험장에서도 마음을 가다듬게 됐고 덕분에 합격까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공링한 씨는 추후 신학 공부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영양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영양사의 길을 바로 걷기보다는 관심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내년에는 경기도로 터를 옮길 예정이다.

그런 그는 "한국어에 서툴렀던 나 역시도 열심히 하니 좋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하고 싶은 공부에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강영옥(70) 씨. 본인제공
공부하는 강영옥(70) 씨. 본인제공

◆최고령 합격자…외우고 또 외워

강영옥(70) 씨는 늦깎이 학생이다. 젊은 시절엔 전업주부로 자녀를 키워왔고 60세쯤 어린이집 조리사로 취직해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강 씨의 마음속엔 늘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엔 국어 선생님에 대한 꿈을 키워왔기에 50세쯤엔 방송통신대에 입학, 국어국문과를 전공하기도 했다. 그러다 조리사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관심을 가진 분야가 '식품영양학'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조금 더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겼고 주위의 권유에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 식품영양전공 성인학습자반에 입학했다.

일과 학습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일을 마치고 야간에 수업을 듣기까지는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컸다. 혹여나 건강에 무리가 될까 강 씨 가족 역시 그의 공부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한계가 점차 느껴졌지만 강 씨 역시 포기보다는 다른 방안을 찾아냈다. 성인학습자반의 경우 주 2회 오프라인 강의 외에는 온라인 강의가 대부분이었기에 아침, 저녁 1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수업 듣기에 나섰다. 매일 달리는 버스와 지하철 안, 강 씨는 이어폰을 꽂고 공부했다.

강 씨는 "학기 초에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영양학 용어도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교수님이 자세하게 내용을 알려줬고 또 같이 수업을 듣는 성인 학습자 동료들도 서로 응원도 해주며 챙기다 보니 점점 공부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강영옥(70) 씨. 본인제공
공부하는 강영옥(70) 씨. 본인제공

'모르면 일단 외우자'. 강 씨의 공부법 중 하나다. 외워도 금방 까먹는 탓에 강 씨는 무한 반복적으로 내용을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영양사 국가시험에 접수한 뒤에도 그에겐 무한 반복이 유일한 공부법이었다. 문제집 4권을 사서 두 번을 반복했다던 그는 시험이 코앞에 다가올수록 '합격'만 바라보고 밤낮 없이 내용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는 "이해가 어려워도 일단 외웠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내용을 보고 또 보니 흐름이 보였다. 어려웠던 내용도 점차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국가시험 당일에도 거뜬하게 합격선을 넘었다"고 했다.

끝으로 강영옥 씨는 최고령 합격자로 지역의 모든 젊은이에게 "무엇이든지 도전해 보라"는 말을 남겼다.

강영옥 씨는 "공부를 하면서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공부는 자아실현의 과정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엇이든 해보면 좋겠다. '학생'이란 타이틀이 얼마나 좋냐"라며 "끝으로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신 전공 교수님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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