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게 여겨지거나 소외되는, 혹은 그냥 흘러가버리는 순간이나 상황들이 아깝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순간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죠."
독일에서 7년 간의 유학 생활. 한무창(51) 작가에게 그 시절은 자신의 예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증폭한 시기였다. 특히 타지에서의 낯선 환경은 그간 익숙함 탓에 발견하지 못했던 현상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는 해가 비친 물웅덩이, 해질녘쯤의 하늘색, 유리에 비친 햇살 속 무지개처럼 사소하지만 찰나에 포착된 것으로부터 예술적 감흥을 느끼고 캔버스 위에 풀어냈다.
그는 "평범하거나 일상의 공간이 아닌 처음 가보는 장소, 낯선 공간에서는 똑같은 사물도 낯설게 보였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견하는 우연함과 낯섦을 관람객들도 느꼈으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그림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그려지기 마련이다. 작가 자신이 작품을 통해 순간과 우연, 낯섦에 따른 감동을 먼저 느낄 수 없다면 관객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부터 자신을 예측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새하얀 캔버스나 종이 위에 연필이 아닌 송곳으로 선을 긋는데, 작업 과정에서는 물론 작업이 끝난 뒤에도 보이지 않는 음각의 선들은 색을 칠하거나 빛을 비추는 순간 드러난다.
그가 고안한 이 '인테글리오 페인팅(intaglio-painting)' 기법은 어린 시절 흙에 나뭇가지로 뭔가를 끄적이던 기억에서 기인했다.
"의도성과 꾸밈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손의 감각에 따라 습관을 벗어난 불규칙적인 행위에만 몰두하려 했어요. 매번 작업을 끝내고 조명을 탁 켜는 순간, 낮섦에서 오는 순간적인 감동들을 느낍니다."
작가는 직접 작품 앞을 오가며, 작품을 한 자리에서 지긋이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보길 권했다. 흰 캔버스에 무수히 그어진 선들이 빛에 의해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 걸음을 떼면서 시선을 옮길 때마다 빛과 그림자에 의해 낯설어지는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작가노트에 적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그는 "예술은 아름다운 가치를 찾아가고 그것을 진실되게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의도적이지 않은 우연한 표현은 곧 자연과도 닮아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윤선갤러리(대구 수성구 용학로 92-2)에서 열리고 있는 한무창 개인전 'Moment'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053-766-8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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