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불멸 강요당하는 레닌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53년 사망한 스탈린의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 묘에 레닌 시신과 합장됐으나 1961년 제22차 소련 공산당 대회 후 레닌 곁에서 사라졌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당시는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였던 흐루쇼프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인데 당 대회가 끝날 무렵 1903년 볼셰비키에 가담했던 나이 든 여성이 연단에 올라 전날 밤 꿈 얘기를 했다. 레닌이 현몽(現夢)해 "나는 스탈린 곁에 누워 있는 것이 싫다. 스탈린은 너무나 많은 불행을 우리 당에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각본에 따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해서 스탈린 시신을 레닌 묘에서 들어내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공산주의의 철학적 기반인 유물론(唯物論)을 웃음거리로 만든 결정이었다. 그날 밤 스탈린 시신은 크렘린 뒤 구덩이에 던져졌고, 시신 위에 콘크리트를 부은 뒤 화강암 판으로 덮었다고 한다. 레닌처럼 시신이 영구 보존되기를 원한 스탈린의 소원은 이렇게 날아갔다.

레닌의 바람은 스탈린과 달랐다. 죽기 전 자신의 시신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머니 묘 옆에 묻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1924년 이를 무시하고 방부 처리해 영구 보존키로 결정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에 따르면 이런 결정에는 레닌이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현세(現世)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레닌의 장례위원회 명칭부터 '불멸화위원회'였다. 레닌의 묘가 정육면체 구조물이 된 것도 같은 이유다. 레닌 묘를 설계한 A. V. 슈셰프는 불멸화위원회 회의에서 "건축에서 정육면체는 영원을 의미한다. 레닌을 기념할 묘를 정육면체에서 끌어오자"고 제안했고 불멸화위원회는 이를 채택했다. 소련 공산당은 1973년 당 문서를 갱신하면서 레닌의 당원증부터 재발급했는데 이 역시 '레닌 불멸'이라는 기괴한 공산주의 주술(呪術)의 발로다.

레닌 사망 100주기를 맞아 러시아에서 그의 시신을 매장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런 제안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여러 차례 나왔고 찬성 의견도 높았으나, 레닌 시신은 여전히 붉은 광장의 묘에 '전시'돼 있다. '불멸'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할까. 이번에는 어머니 곁에 묻히고 싶다는 레닌의 바람이 이뤄질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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