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고준위방폐장법 처리, 진영 논리로 접근할 일인가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전과 쌍날개로 추진돼야 할 고준위방폐물 처분장 건설에는 진척이 없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찍어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유가 나온다. AI 상용화 등 미래 먹거리에 전기 수급이 필수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미적댈 일이 아니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는 2~4기 정도의 원전 건설 계획 반영이 유력하다고 한다. 원전을 실질적 전력 수급책으로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원전은 필수"라며 "탈원전을 하면 반도체뿐 아니라 첨단산업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만의 결단이 아니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에는 AI가 초래할 에너지 부족이 화두였다. 챗 GPT 등 AI 학습과 서비스 운영에 대비한 전력 생태계 구축이 중차대해진 것이다. AI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 충당에 신재생에너지만 쓰겠다던 구글도 원자력을 추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프랑스, 영국 등도 원전 추가 건설에 사활을 건다. 고준위방폐물 처분장 건설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보는 배경이다.

현재 우리의 사용후핵연료는 임시저장고에 보관돼 있다. 2030년쯤부터 순차적으로 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5년 넘게 남았다며 느긋하게 관망할 일이 아니다. 조사 계획 수립과 부지 선정까지 10년 넘게 걸린다. 실증 연구와 건설에 각각 10년 남짓 소요된다. 원전 건설과 함께 방폐장을 준비한 핀란드는 총 45년이 걸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관련 법안 처리도 낙관적이지 않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다수의 법안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야권이 탈원전 기조를 고수하면서다. 일각에서는 고준위방폐장법 수용을 윤석열 정부 원전 정책 동조와 동일시하면서 법안 처리가 힘들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원전으로 전력을 공급해 만드는 반도체는 해외에 팔 수 없다"는 반대 논리를 펴기도 했다. 고준위방폐장법 자동 폐기가 코앞이다. 후대로 폭탄 돌리기를 자행하는 선대가 돼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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