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딱, 주먹 쥐어보라고."
옆집 아이와 주먹다짐을 벌이고 들어온 날이었다. 그 날 둘째 오빠의 싸움 특훈이 늦은 오후까지 계속됐다. 복서 자세를 취하며 연신 잽을 날려대는 오빠의 등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아홉살치곤 폼이 제법이었다. 그냥 집에 가자고 하면 "너는 분하지도 않느냐"며 길길이 날뛰었던 오빠는 어른이 돼서도 똑같았다. 돈이 부족해 필요한 걸 살 수 없을 때, 사채업자를 찾아가 담판을 지을 때도 자기 일처럼 화내며 해결해 줬다.
언제나 넓어 보였던 오빠의 등. 이제 두 번 다신 그 등을 볼 수 없다. 그 사실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아직도 오빠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흐른다.
◆결혼생활 내내 이어진 경제적 압박
도혜주(가명·63) 씨는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두 살 위인 둘째 오빠는 혜주 씨를 끔찍이 아꼈다.
혜주 씨는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일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서른 살 가까이 결혼을 미룬 혜주씨를 가족, 친지들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맞선 볼 남자들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나타나는지. 혜주 씨는 친지들이 주선한 맞선 자리에 수도 없이 끌려나갔다. 마지막 맞선 상대는 인테리어 관련 사업을 하는 두 살 연상의 남자였다.
그와 맞선을 본 뒤 혜주 씨는 출근길 교통사고를 당해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맞선 후 고작 몇 번 만난 게 전부였던 그 남자는 혜주 씨를 만나러 꼬박꼬박 병실을 찾았다. 정 많은 남자였다. 혜주 씨는 그 남자와 서른 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남편은 매정한 사람이었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둔 혜주 씨에게 남편은 한 달에 3만원만 줬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에게 생활비를 줬으니,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게 남편의 논리였다.
필요한 생활비는 시어머니에게 매번 돈을 받으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반찬 살 돈으로 천원짜리 한 장만 주는 사람이었다. 시부모와 시누이 2명, 시동생 1명, 남편과 혜주 씨 등 일곱 식구가 먹을 반찬을 사기에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둘째 오빠에게 받은 돈으로 시댁 식구들 반찬을 사곤 했다.
아들 윤석(가명·33) 씨가 태어났지만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돈이 궁했던 혜주 씨는 지인의 꼬임에 넘어가 다단계에 손을 대고 말았다.
팔지 못한 홍삼과 가전제품이 쌓이고, 물건을 사느라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혼자 해결해 보겠다며 신용카드 돌려막기까지 했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결국 사채까지 썼다.
◆끝없는 발버둥…불길 속에 사라진 집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언제나 슈퍼맨처럼 혜주 씨를 도와주던 둘째 오빠는 2002년 3월 퇴근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10월엔 남편과 이혼했다. 혜주 씨에게 남은 건 수천만원에 달하는 빚더미와 11살 난 아들이었다.
채무불이행자 신세인 혜주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식당 설거지, 전단지 붙이기 등 현금으로 일당을 받는 일만 가능했다. 식당에서 12시간 꼬박 일해도 손에 떨어지는 건 5만원이 전부였다.
라면 한 개를 끓여 아들과 나눠 먹고, 그마저도 없어서 굶는 날도 많았다. 월세 낼 돈이 없어 쫓겨나는 게 일상이었다. 금융회사 채권회수팀이나 사채업자들이 매일 찾아왔다. 심할 땐 한 달에 4번 집을 옮긴 적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혜주 씨는 2018년 두 발에 화상을 입었다. 목욕물을 데우려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병원 갈 치료비가 없어 약국에서 산 주사기로 발등에 차오른 물을 빼내고, 소염제를 먹으며 버텼다.
다행히도 이웃 주민이 혜주 씨가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고, 행정복지센터로 연결해 준 덕분에 기초생활수급자에 지정됐다. 이후 자활근로사업을 통해 자동차 부품 조립 등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혜주 씨는 지난해 8월 건강 문제로 직장을 떠났다. 만성콩팥염과 심장질환, 고혈압 등 각종 질환이 겹치며 사직 두 달 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오른쪽 눈은 실명했다. 왼쪽 눈도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다.
아픈 혜주씨 대신 아들 윤석 씨가 올해부터 정식으로 자활근로를 시작했다. 그전까진 형편 때문에 전문대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만 전전했던 아들이었다.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는 모자에게 지난 1월 불행의 돌풍이 또 불어 닥쳤다. 이번에도 물을 데우다 일어난 사고였다. 팔려고 모아둔 파지에 불이 붙어 모자가 겨우 얻은 보금자리인 월세방이 남김없이 타 버렸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지만, 1천800만원을 들여 복구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신장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전문의 소견에 따라 혜주 씨는 지난달 16일 입원해 신장 투석 치료를 받는 중이다. 갈 곳 없는 윤석 씨는 숙박업소에서 지내고 있다.
치료가 얼마나 길어질지, 복구공사는 또 얼마나 걸릴지. 아들은 언제까지 모텔 생활을 해야 할지, 이 불행은 언제 끝이 날지…. 혜주 씨는 쇄골 가까이에 꽂은 투석 호스가 기도를 틀어 막은 것처럼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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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뇌경색 앓는 아들 치료비 걱정 황윤선 씨에게 2,507만원 전달
12살에 뇌경색 찾아온 아들을 치료해야 하는데 생활고에 허덕이는 황윤선 씨(매일신문 1월 16일 10면 보도)에게 2천507만1천877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신연걸 8만원 ▷이상준 5만원 ▷이창영 5만원 ▷김점숙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권오영 2만원 ▷박임상 2만원 ▷신종욱 2만원 ▷박상옥 1만원 ▷배상영 1만원 ▷이진기 5천원 ▷이장윤 2천원 ▷'김경희서율' 1만원 ▷'김명숙도움' 3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갖 사고 겹쳐 성치 못 한 몸으로 독거 중인 김경식 씨에게 2,216만원 성금
어린 시절부터 온갖 사고 겹쳤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성치 않은 몸으로 홀로 사는 김경식씨(매일신문 1월 23일 10면 보도)에게 46개 단체, 121명의 독자가 2천216만4천33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빛명상본부 6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세무법인송정김천2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장현식)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구미현대병원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남의원(김홍구)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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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창희/표혜원' 30만원 ▷'관세음보살님의가피를' '범물동김선우' '주님사랑' 각 10만원 ▷'김영숙-경식씨후원' '불자정순화' '힘든시기서로돕' 각 5만원 ▷'김미혜(힘내세요)' '석희석주' '조희수힘내세요' '지현이동환이' '힘내세요' 각 1만원 ▷'수민' 5천원 ▷'모두희망이생기' 2천250원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 ▷'이자보태기' 8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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