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의 슬픔'은 러브스토리의 고전이지만 결국 불륜 이야기다. 베르테르는 처음부터 롯데가 약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롯데는 결혼한 뒤에도 베르테르의 접근을 막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초여름에 시작하여 이듬해 겨울에 끝난다. 그동안 이들의 육체적인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을까? 몇 차례 손을 잡은 바 있고 키스를 한 번 한 게 전부다. 18세기 후반의 일이니 별것 아니지는 않다. 이 소설의 요체가 이런 주제는 아니지만 하찮은 문제는 아니다.
베르테르와 롯데가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된 동기와 처음으로 키스를 하게 된 경위는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그런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랬으므로 뭔가 불가항력의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술에 취해 이성을 잃었다거나 홍수에 길이 막혀 동굴에서 잤다거나 하는 변수 말이다. 물론 괴테가 그런 통속한 설정을 재탕할 리는 없다. 두 사람의 이성과 윤리의식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키고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 것은 바로 문학적 공감능력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된 데는 한 편의 서정시가, 껴안고 키스를 하게 된 데는 한 편의 서사시가 도화선이 된다. 전자는 클롭슈톡의 '봄의 축제'이고 후자는 오시안의 시다.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베르테르와 롯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춤도 추고 게임도 하며 통상적인 사교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소나기가 쏟아지고 두 사람은 창가로 가 밖을 내다본다. 봄비에 젖은 땅에서 향기로운 흙냄새가 솟아오른다.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밖을 보던 롯데가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베르테르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클롭슈톡!" 이어지는 베르테르의 반응은 이렇다.
나는 즉각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저 장엄한 송가의 마법에 빠져들었네. 나는 몸을 굽히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네.
장엄한 송가란 당시에 글 좀 한다는 사람이면 읊조리고 다니던 클롭슈톡의 시 '봄의 축제'를 말한다. 이 시의 하이라이트가 쏟아지는 소나기에 산천초목이 감격하여 진동하는 장면이다. 처음 만난 두 남녀가 비를 보며 같은 시를 떠올리고 그것을 확인한 감동이 너무 강해 자기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면 운명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그래도 두 사람은 선을 넘지 않고 잘 버틴다. 그 선을 뭉개버리는 것이 오시안의 서사시다. 오시안은 고대 켈트족을 배경으로 한 영웅들의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 아일랜드의 음유시인이다. 어느 날 베르테르가 그의 시를 롯데에게 낭독해주는데, 여주인공이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다 아파하는 장면에서 롯데는 눈물을 쏟아내며 베르테르에게로 쓰러진다. 이어지는 사태는 이렇다.
불같은 두 볼이 마주치고 그들에게 세상은 사라져 버렸다. 베르테르는 두 팔로 그녀를 안고 가슴을 누르며 떨리는 입술에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화자는 두 사람의 초자아를 무너뜨린 저 시어의 힘을 "전폭적인 폭력"(die ganze Gewalt)이라 부른다. 이성과 윤리의식을 전폭적으로 해체해 버린 힘이다. 며칠 뒤 베르테르는 다 이루었다는 듯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주검 옆에는 또 한 권의 책이 펼쳐져 있다. 레싱의 비극 '에밀리아 갈로티'다. 이렇게 '베르테르의 슬픔'은 문학 밖의 문학이고 문학을 위한 문학이다. 18세기 후반에 이 소설에 빠진 젊은이들이 주인공을 모방하며 난리가 났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일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낙연 "민주당, 아무리 봐도 비정상…당대표 바꿔도 여러번 바꿨을 것"
위증 인정되나 위증교사는 인정 안 된다?…법조계 "2심 판단 받아봐야"
'국민 2만명 모금 제작' 박정희 동상…경북도청 천년숲광장서 제막
일반의로 돌아오는 사직 전공의들…의료 정상화 신호 vs 기형적 구조 확대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