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달구벌 문명 발상지를 살려내자

김종원 전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

김종원 전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김종원 전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

대구에 60년 가까이 살면서 늘 궁금했던 한 가지, '달구'라는 지명의 어원과 유래였다. 그런데 달구벌 분지 맨 서쪽 죽곡산 모암봉에 오르면서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달구벌 분지 맨 동쪽 끝 지평선 너머에서 밝아오는 어둑새벽 여명을 맞이하면서 알아차렸다. 달구벌은 닭벌이며, 이른 아침이 찬란한 벌판이며, 문명의 싹이 움튼 곳이다. 잠자는 세상을 일깨우는 장닭, 유라시아 대륙 서단 포르투갈의 국조인 것처럼 대륙의 동단 대구 달구벌 시조로 손색이 없다.

달구벌 새 아침 일출과 장닭의 울음소리를 온몸으로 맞이한 첫 사람은 월성동, 서대구 달성습지, 다사로 이어지는 드넓고 비옥한 땅에 정착했던 선사인이다. 이 일대의 중심은 메소포타미아의 뜻처럼 낙동강과 금호강이 하나 되는 두물머리이고, 죽곡산은 구석기·신석기 축의 시대에 움텄던 달구벌 문명 발상지를 지켜본 신성한 땅이었던 것이다. 성혈(바위 구멍)과 윷판 암각화가 죽곡산에 수두룩하다는 소문에 멀리 강화도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황평우 박사의 첫 일성이다.

죽곡산에는 성혈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렷한 윷판 모양이 켜켜이 새겨진 암각화도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여태껏 죽곡산 일대 수많은 유적 발굴 조사 보고서에는 이런 바위 암각화 기록은 없다. 2024년 1월에 있었던 강정마을-죽곡2지구 연결도로 개설 공사 지표조사에서도 "성혈이 있는 암각 2기에 대한 현지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뿐이다. 사실 이 암각 2기는 도로 공사로 훼손된 것으로 지역 주민이 달성군과 문화재청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알려진 것이다. 죽곡산 고대 선사 유적에 대한 세심하고 차분한 조사가 필요할 터인데, 달성군에 물으면 문화재청을 가리키고, 문화재청에 물으면 달성군에 물으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대도 아닌데 너무 답답하고, 기꺼이 세금을 낸 시민이 국가로부터 행정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윷판 암각화는 인류 최고의 시계이고 달력이다. 선사시대 첨단과학의 절정이다. 윷판 암각화 한가운데 이른바 북극성 자리에 정오 때 나무젓가락을 세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윷판 암각화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구석기·신석기 축의 시대로부터 적어도 2천 년 이상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한 점의 성혈이 진화해 창안된 인류 문화유산이다. 둥근 윷판 암각화는 동짓날을 설날로 여겼던 여신의 시대로부터 정착 농경이 성행한 남신 시대까지 줄곧 이어졌고, 마침내 역사시대에는 농경의 놀이문화 중심이 되면서 사각형 윷판으로 변천한다.

어떤 이는 성혈이나 윷판 암각화를 흔해 빠진 고대 유적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암각 행위를 한 부모 선조의 존귀한 '뜻'을 간과한다면, 이는 역사학 이전에 역사의식의 문제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그렇다. 죽곡산의 성혈이나 윷판 암각화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장미꽃 같은 존재이다. 지구 북반구 전역에 흩어져 살던 선사인들이 물(水)을 기원하며 새긴 공통의 기호 문자가 성혈이라면, 윷판 암각화는 고대 문양사가 집대성된 'The Language of Goddess'에도 실린 적이 없는 한반도 정착 선주민의 최첨단 발명품이다. 오는 정월 대보름 초저녁에는 죽곡산에 올라 달구벌 동쪽 지평선에서 오를 달님을 두 손 모아 맞이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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