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진실을 은폐하는 장막(帳幕) 앞에서 사회적 참사를 애도하는 방법’ 이수인 연출의 <장막을 걷어라>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고전과 현대적 서사를 비틀어 미니멀리한 형식과 무대 문법으로 독특한 무대형식을 구축해온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이수인 연출을 떠올릴 때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심청>(2016), <왕과 나>(2017), <춘향>(2018), <문정왕후 윤씨>(2021) 등의 사극 시리즈다. 사극의 정서와 극 중 인물들을 뒤집는 이수인 방식의 재해석은 사극의 궤도를 이탈하면서도 특유의 형식으로 구조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수인 연출의 형식적 구조를 이루는 것은 극 중 인물의 캐릭터 뒤집기, 배우의 퍼포먼스, 신체 리듬감과 음악, 미니멀한 오브제 설정 등이 최소한의 필요한 표현 도구로만 사용되며 무대를 채우는 기발함이 엿보인다. 이러한 연출적 장비만으로도 연출, 서사, 배우, 무대가 균형을 이루고, 한국 사회를 겨냥하는 풍자를 드러내는 날카로움과 연극적 유쾌함도 잃지 않는것이 이수인 연출이 이끄는 극단 떼아뜨르 봄날이 추구해온 형식들이다. 탈재현성이 중심이 되는 이수인 연출의 무대에서 배우들의 행동하기는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감각적 행위로 전달되기보다, 감정을 전소시키는 덜어내기 방식의 리듬감으로 양식화 되어 장면을 이룬다. 대사도 극 중 인물의 내면을 확장하는 감정으로 동일화되기보다, 배우와 극 중 인물 간 경계적 거리를 유지하며 극 중 인물만 존재하는 '인물처럼 드러내기'의 연극적 행위로만 감각된다.

연극임을 환기시키는 브레히트적 방식을 취하면서도 이수인 연출은 공간 구조에서 서사극적 태도를 유지하기보다, 서사를 완충시키는 음악, 배우의 퍼포먼스, 오브제를 통해 서사를 전달한다. 배우들의 허밍의 리듬은 현대적인 코로스 언어가 되면서도, 좌우로 한 발, 뒤로 두 발, 물러서서 네 발, 연속적인 동작의 리듬 속 장면을 대비시키는 장면전환은 극적 효과로 나타나게 된다. 극 중 인물들의 대화는 극적 세계 외부를 향한 언어로 지속되고, 그 사이를 연결시키는 음악적 리듬과 몸동작들은 이수인표 연극 형식이 된다. 이런 점에서 사극 시리즈 외에도 그동안 선보여온 <엘렉트라>(2020), <유리가가린>(2021), <해피투게더>(2022), <광장, 너머)(2022), <맥베스>(2022) 역시 독창적인 표현형식 속에서 한국 사회를 향한 사회적 발언을 지속해온 이수인 연출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동안 아웃사이더이기를 고집해왔으면서도 연극이 사회적 행위란 점을 놓치지 않았던 이수인 연출은 매우 지적인 지식인 연출가이다. 2019년의 용산 참사를 다루고 있는 <장막을 걷어라>(제작 공간서로, 작·연출 이수인, 눈빛극장)는 망루, 화염병, 콘테이너, 경찰 진압 작전과 생존을 위한 저항이라는 무거운 도구들 하나 없이, 의자 하나, 전자드럼과 큰 북, 배우와 노래만으로 구성된 공연이다. MB정부와 오마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 쇠고기 파동, 용산 참사 피고인들의 대법원 판결 등 그날의 현장으로 무대를 되돌리며 여전히 장막에 가려진 용산 참사의 관련 인물들을 이수인 방식으로 소환하고 있다. 심재민 평론가는 " 이수인 연출은 특정한 미학성에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연극적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장점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구조를 파괴하는 연극성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 이수인 연출,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애도의 방법' <장막을 걷어라>

노동연극과 산업재해, 사회적 참사, 국가폭력문제를 다루고 있는 연극은 대체적으로 피해자의 진실과 사건 현장을 서사화하는 직접적 방식을 취한다. 연극적으로 가공되는 은유의 환기보다, 재현의 현장성을 통해 실체적 진실로 전달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마치 현장에서 다함께 그 사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시간을 돌려보자.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민시위가 벌어졌고, 이듬해에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용산재개발 사업이 추진되었다. 당시 4지구에 위치한 남일당 상가 건물 철거과정에서 격렬한 저항으로 점거 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철거민)와 전국철거민엽합 회원들을 사태 발생 하루만에 특공대 경찰관과 공권력이 투입되어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과잉진압과 화재로 인해 경찰관 1명과 농성자 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 이를 대법원은 농성자들의 화염병과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철거민과 경찰관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공권력 투입은 정당하다고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용산 참사 당시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에 대한 대법원 선고에서 철거대책위원장을 비롯한 9명 중 7명은 실형이 확정되었고, 2명은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망루의 화재로 인한 경찰관과 농성자들의 죽음을 철거민 농성자들이 투척한 화염병에의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용산 참사는 잊혀졌고 재개발 일대와 남일당 건물은 서울시의 노른자 땅으로 변해 센트럴파크 해링턴 스퀘어 건물이 들어서며 그 일대는 용산뉴타운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며 재개발 사업은 탄력적으로 이어졌고 당시 진압을 지휘한 경찰청장은 국회의원으로, 용산재개발을 주도했던 당시 시장은 서울시 공공재개발에 시동을 걸고 있다. 용산 참사 판결을 주도한 대법관 중 일부는 사법 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지 5년 만에 1심 무죄가 선고되었다. 연극 <장막을 걷어라>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국가권력의 장막으로 가려진 진실을 규명하고 공권력 과잉의 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목소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수인 연출도 연극으로 싸우는 방식부터가 다르다. 무대는 그동안 이수인 연출이 추구해온 방식대로 미니멀하다. 무대 중앙에는 의자가 하나, 노래, 희미한 영상 스크린 배경막, 큰 북과 전자드럼, 그리고 배우들의 과장되고 희극적인 연기 방식으로 대법원 재판정으로부터 그날의 참사를 소환하고 애도한다. 연극의 첫 장면은 대법관(김수빈 분)의 판결문으로 시작된다. 피고인(망루 농성자)들의 형법상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전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다"는 선고가 내려지고, 이어 "하나님, 나라의 근간이 되는 법질서가 위협받고 있습니다"라는 기도가 마치 숭고한 예배처럼 위트있게 이어진다. 공연은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다큐적 재현과 재판 결과를 연극적으로 뒤집는 허구적 가공이 교차되어 장막 속에 가려진 용산참사의 인물들을 소환하며 조롱한다. 구성하는 내러티브는 특정 장면과 사건을 향해 점층적으로 발화되는 구조가 아니라, 조각난 에피소드로 배치되지만 공연 전체 텍스트의 맥락은 유지된다. 극 중 장면은 버라이어티쇼처럼 부산하게 움직이면서도 연극적으로 중화되고, 배우들의 퍼포먼스와 움직 리듬으로 배경, 극 중 인물들의 상황이 시각적으로 구체화된다. 그 결과 민감할 수 있는 시사적 사안에 대한 표현의 농도가 노골적으로 짙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음악을 서사와 연결시키는 구조, 배우들의 정서적 동작과 동시에 감정을 절제시키고 캐릭터만 부각시키는 과장되고 속도감 있는 연기적 표현이 음악을 믹싱(mixing)하듯 연결되어 이수인 연출만의 시퀸스로 배합되는 장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사의 텍스트가 소설적이라면, 장면은 웹툰처럼 다루고, 전체구조는 연극적인 형식이다. <장막을 걷어라>에서도 이러한 특징들은 극대화된다. 스스로 "산소 같은 남자"라고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흥진(손흥진 분)이 등장하면서 무대는 전환된다. 흥진은 산소가 불을 만드는데 절대적이듯 "언제 확 타오를지 모르는" 남자이기도 하다. 흥진이라는 캐릭터가 아닌, "언제 확 타오를지 모르는" 이라는 그의 발화가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오바마 취임 연설을 소환하고 헨리 키신저와 베트남 전쟁을 환기시키며, 시간은 그날의 남일당 건물 25명의 철거민들과 서울지방경찰청장, 대통령과 사건의 책임자들을 호명한다. 돌연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흘러나오고 이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며 절규하는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흘러나온다.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답습하는 방식의 도시 재개발은 거주민의 행복과 인권, 생존권이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을 대중가요 가사에 빗대 넌지시 전달한다. 배우들은 좌우 두 발, 뒤로 네 발, 앞으로 두 발 등 상하좌우로 척척 돌며 대중가요의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웃음으로 조롱과 풍자의 날을 세운다. 행동과 움직임의 리듬은소극(笑劇)적이고 표정은 비극적이다.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 권력으로 은폐된 장막(帳幕)

산소같은 남자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을 말투, 사투리, 외모가 전혀 사건 핵심관계자들을 닮지 않았다고 몰아세운다. 극 중 인물로 분한 배우들이 실제 인물과 닮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는 것은 그들의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이수인표 놀이 방식이다. 철거민 진압 현장에서 사망한 특공대원이 등장하면서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를 연결한다. 명령에 따라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던 중 사망한 특공대원의 죽음을 이장희의<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의 노랫말처럼 국가의 부름 앞에 모든 것을 희생한 죽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70-80년대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장면과 연결되는 최고의 장면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따른 시민 집회와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연결한 장면이다. 분하고 억울한 자신의 설움을 토로하는 권력자의 위선은 시민 집회가 벌어지는 광화문을 <아침이슬> 속 광야에 빗대는 뻔뻔함으로 드러난다. 광화문 집회는 한갓 소음의 농성이며 특히 죄인에게 너그러우신 주님에게 고백해 벗어나야 할 위기의 현장이다. 이어 원심의 양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고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이 이어지면서 객석에서는 웃음이 빵빵 터진다. 마지막 장면은 당시 경찰청장과 대통령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자의 의무에 에 대해 묻는 장면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권력의 권한이란 "막강한 권력을 십분 활용해 대한민국 재벌과 기업들과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경찰과 검찰 국세청과 공권력을 동원해 보호해 주는 나라"였지만, "모든 국민이 일체의 억압과 핍박과 착취와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키고 보호하며, 모든 국민이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세상"으로 정정되면서 두 인물은 "죄송합니다"를 건조하게 되뇌인다. 강허달림의 <멈춰버린 세상>이 무대에 흐른다.

이수인 연출은 연극 <장막을 걷어라>에서도 역시 필요한 최소의 재료만으로 독창적인 은유의 형식을 보여주었다. 배우들의 동작과 리듬감, 노래 가사로 연결되는 서사는 뮤직드라마를 표방하면서도 극적 특성이 견고하고 메시지는 강렬하다.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관객석의 웃음이 증명하듯, 무거운 내용을 중화시키는 이수인의 특효 재료들이 작동하면서도 주제에 대한 균형감을 이탈하지 않았다. 연극, 음악, 버라이어티, 희극적 요소를 섞어 특화된 이수인표 무대를 개척한 것처럼, 그의 연출 특성과 무대 발언은 두 발 걷고, 세 발 뒤로 물러서 박수치며 조롱하는 리듬 속에 살아난다. 그것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에게 한국연출가협회는 2023년 올해의 연출가상을 헌정했고, 현재 그는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전주와 대학로를 왕복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송흥진은 정중동의 연기로 극단 떼아뜨르의 연기 양식이 체화된 배우이고, 7분에 걸친 판결문 낭독을 차분하게 소화한 강민지는 판결문이라는 감정이 배제된 텍스트를 매끄럽게 소화하는 연기로 전후 장면의 효과적인 대비를 끌어냈다. 이수인 연출은 "용산참사가 올해 15주기인데, 진실은 장막 뒤로 은폐되어 있고,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관련자들은 유명 정치인이 되었다. 유족들이 여전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연극으로나마 시민의 한 사람으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진실이 살아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희망하는 바램이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특유의 표현 방식을 찾게 된 것 같다"고 연극 <장막을 걷어라>에 대해 설명했다. 공연은 만석이였다.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장막을 걷어라.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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