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당근마켓, 너마저"…오픈톡·텔레그램 이은 '미성년자 사각지대‘

미흡한 관리 시스템으로 범죄 우려↑

당근마켓 플랫폼,
당근마켓 플랫폼, '미성년자 사각지대' 논란. 전지선 기자

가출한 지 4개월이 된 고등학생 A양은 1월 초 당근마켓 앱 내 커뮤니티 카테고리 '동네생활'에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A양은 알바를 하며 그림 그리기를 열심히 하고 싶다며 응원 글을 부탁했다. 해당 글은 1주일 만에 500명 이상이 읽으며 댓글이 달렸다. 힘내라는 응원 댓글 가운데, '채팅 달라', '사진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라는 다소 황당한 글이 올라왔다. 글을 작성한 고등학생도 당황한 듯 '무슨 사진이요?'라고 답했다. 해당 글을 본 한 당근마켓 이용자는 "요즘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텔레그램을 악용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가 있다고 들었는데 당근마켓도 악용될 것 같아 걱정이다"라며 "나쁜 마음을 먹은 어른들이 가출 소녀에게 채팅하며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지 않느냐"라고 우려했다.

익명으로 활동이 가능해 '온라인 범죄 온상'이었던 카카오톡 오픈채팅, 텔레그램과 함께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도 범죄 사각지대에 추가될 예정이다. 당근마켓 내 커뮤니티 카테고리 '동네생활'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범죄 조짐이 포착된 것. 하지만 당근마켓을 키워드 필터링 시스템을 통한 범죄 예방에는 전혀 손을 쓰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4일 20대 남성은 오픈 채팅으로 연락하던 예비 중학생을 경기 평택시 한 룸카페로 데려가 성범죄를 저질러 구속됐다. 또 지난 11일 또 다른 20대 남성은 자신이 개설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연락한 10대 여학생 B양을 오산의 자택으로 유인해 미성년자약취유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처럼 최근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텔레그램 등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악용한 미성년자 성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도 미성년자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되고 있다. 위 A양의 사례 처럼 미성년자에게 아무런 제재 없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생활은 글 작성자가 댓글을 단 이에게 쪽지를 보내거나, 혹은 작성자가 판매했던 중고 거래 이력 등을 통해 연락을 취할 수 있다. A양의 글에 올린 '채팅 달라'는 댓글만 보더라도 당근마켓은 둘이서 은밀한 대화가 언제든지 가능한 시스템이다.

특히, 동네생활 내 게시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려면 위치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동네 인증'이 필수여서 미성년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성인은 인근에 있는 셈이다. 결국 오픈채팅을 악용한 미성년자 범죄처럼 당근마켓의 커뮤니티 방식도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것.

유지연 법무법인 심평 변호사는 "실제 범죄 사건이 발생할 시 경찰서에 신고한다면 형사처벌은 가능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범죄가 일어난 뒤에도 신고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를 전했다.

당근마켓의 부실한 운영시스템도 범죄 악용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당근마켓 동네생활의 키워드 필터링 시스템에는 미성년자에서 발생하는 '가출' 키워드를 걸러내지 않고 있었다. '마약'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손쉽게 검색됐다.

'가출이나 마약 등 부적합 키워드를 막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당근마켓 관계자는 "'가출'이라는 특정 키워드로 일괄 제재할 경우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 정보 게시글이나 가족을 찾는 글 등 도움을 청하는 게시글까지 모두 제재될 수 있다"라며 "이용자 신고와 모니터링을 통해서 부적절한 내용이 확인될 경우 관련 게시글과 댓글을 미노출하고 문제 행위를 한 이용자를 제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다시 (가출 소녀 글을)검색하면 미노출 처리 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31일 확인 결과 여전히 해당 게시글은 노출되고 있으며 '사진'을 요청한 댓글에는 오히려 '무슨 사진, 미친거 아니냐'는 우려 섞인 글이 올라왔다.

당근마켓의 이 같은 안일한 대응에 대해 유지연 변호사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회유해 성범죄 등 각종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부적합한 키워드는 AI 필터링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이 철저한 자체 모니터링으로 사전에 관리할 수 있도록 기술적, 법률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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