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조기현, 홍종 지음 / 한겨레 출판사 펴냄

가족 간병 이미지. 게티이미지 뱅크.
가족 간병 이미지. 게티이미지 뱅크.

2021년 5월 대구에서 10년간 아버지와 단둘이 산 22세 청년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어린 나이에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영 케어러의 간병 살인'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았다.

경찰·검찰 조사에서 아들은 "혼자 아버지의 병 간호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채무 등의 경제적 이유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아들은 이듬해 3월, 징역 4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영케어러(Young Carer)'. 우리말로 가족돌봄청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들을 일컫는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주요 정당 후보들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회에서는 질타가 이어지자 보건복지부 장관도 고개를 숙였지만, 관심은 거기서 그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실시한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실태조사에 전국에서 총 4만3천832명의 전국 중·고등학생과 만 13~34세 청(소)년이 참여했다. 이 중 1천 802명만이 가족돌봄청년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려졌다. 그렇지만, 이 역시 부실하기 그지 없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가별로 청소년 인구의 약 5~8%가 가족돌봄청년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청소년 인구에 대입하면 18만4천~29만5천명의 영케어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추정치가 나온다. 그러나 복지부의 조사로 파악된 가족돌봄청년은 추정치의 0.29~0.46%에 불과하다. 단순히 우리나라 청소년 인구에 대입을 한 숫자이기 때문에 논리정연한 추정치라 볼 수는 없지만, 추정치의 1%도 채 되지 않은 결과 역시 현실 반영을 제대로 했다고 보긴 힘들다.

'영 케어러'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노부모를 부양하거나, 신체·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녀를 평생 부양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부부가 서로를 부양해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돌봄 필요성은 증가되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그 민낯은 더 드러났다. 그리고 이런 논의들은 간병비 지원, 돌봄노동자의 처우 보장 등의 제도 개선과 서비스 확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만, 책에서는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에는 '각자도생'의 논리가 깊이 각인돼있다. 이 논리에 저항하며 일상에서부터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며 "그렇게 '돌봄 위기 사회'를 함께 '돌봄 사회'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 조기현은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의 대표로, '영 케어러'로서의 삶을 이미 살아본 인물이다. 관련된 책을 이미 여러권 출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저자 홍종원은 의사다. 다만, 병원에 앉아 환자들을 기다리는 의사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는 방문진료 전문병원인 '건강의 집 의원'을 열어 아픈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책은 이 두 사람이 오랫동안 돌봄 현장을 경험하고 목격한 내용을 토대로 묶어냈다. 총 5장(章)으로, 각 장은 두 사람이 나눈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1장에서는 '돌봄 위기 사회'가 된 한국의 돌봄 실태를 짚고, 왜 이 자체가 위기가 됐는지 살펴본다. 2장에서는 왜 우리에게 '돌봄의 시간'이 부족한지 알아본다. 3장에서는 '좋은 돌봄'이 무엇인지, 4장에서는 돌봄의 당사자가 안도감을 느끼는 공감을 만들 방법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5장에서는 돌봄을 중심에 둔 사회, 혹은 돌봄으로 재구성된 사회로 이행할 방법까지 제시한다.

"돌봄은 제도화된 서비스를 넘어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의 이름이 돼야 한다. 우리 모두가 취약한 존재이며, 항상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다는 '상호의존'의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 돌봄의 위기를 넘어설 방법이다" 책 내용 중. 35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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