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선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이후 김기현 전 대표 체제에서 '100석 건지기도 힘들 것'이라던 때와 비교하면 반전의 계기를 잡은 셈이다. 그 중심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취임 이후 빠르게 당을 장악했고, 용산과 관계에서도 기대 이상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는 양상이다.
한 위원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선거 프레임에도 변화 양상이 나타났다. 야당은 '정권 심판론' 프레임으로 선거를 손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주도하는 '86운동권 심판론'과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에도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정권 심판론에 기대 선거를 치르려던 야권으로선 당혹스러운 대목이다.

◆용산과 관계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취임 전후로 야권은 그를 '윤석열 아바타'로 공격했다. 검사 후배로 윤석열 사단의 핵심인 탓에 용산에 할 말을 못 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보수층에서도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차별화에 실패할 것이란 얘기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가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가 회자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임기 1년밖에 남지 않아 차별화가 가능했지만 임기가 3년 남은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는 애초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애초 차별화를 할 수 없다. 결국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고, 대다수의 정치권 인사도 비슷하게 전망했다.
차별화 여부의 잣대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였다. 김경률 비대위원이 김 여사 문제를 당내에서 공론화했고, 용산이 격노(?)하면서 한 위원장은 최대 위기에 빠졌다. 여권에서 대통령과 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부딪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보수층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고, 야권 지지자들은 내심 환호를 질렀다.
이럴 경우 통상 당 대표가 고개를 숙인다. 2, 3일 언론을 피하고 잠행을 하면서 근신한다. 반(半)공개적으로 사과한 뒤 자리를 보전하거나 사표를 낸다. 잠행 동안 물밑에서 거취를 조율한다. 정치권의 통상 수법이다. 김기현 전 대표가 물러날 때도 큰 틀에서 이런 과정을 거쳤다.
한 위원장은 뻔한 루틴을 거부했다. 그는 "사퇴 요구를 받았지만 내가 거부했다"며 용산과의 물밑 내용을 수면 위에 끌어올렸다. 현실 정치에서 본 적도, 앞으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공멸 부담을 느낀 양측은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파장이 상당했다. 수직적 당정 관계 극복이라는 숙제를 자연스레 해결했다. 여권의 속성상 수평적 당정 관계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아바타' 이미지를 벗어나 어느 정도 차별화를 했다고 국민들이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충돌 이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 위원장이 당 대표 직무를 '잘하고 있다' 52%, '잘못하고 있다' 40%로 조사됐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긍정 52%, 부정 24%와 비슷한 수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참조)
특히 '충돌'은 한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총선 성적표가 그의 정치적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패하더라도 정치적 미래까지 일순간에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살아 있는 권력과 충돌이라는 큰 정치적 자산을 확보한 덕분이다.

◆공천 주도권
선거에서 공천이 가장 민감하다.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여권의 공천은 대통령 주변이 사실상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기현 전 대표 체제에서 용산이 공천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압도했다.
한 위원장은 당이 공천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공천 신청자 심사 과정에서 평가자로도 참여한다. 한강 벨트에 민주당 86운동권 세대와 대결에 자객 공천 가능성도 열어놨다.
원희룡 전 장관, 김경율 비대위원, 윤희숙 전 의원 등 자객 공천 대상자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띄웠다. 경쟁 후보들의 반발에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대통령과 갈등 당시 대통령실에서 '사천 논란'을 문제 삼았던 것을 감안하면 한 위원장은 자신의 방식으로 공천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한 위원장이 공천을 오롯이 주도할 수는 없다. 영남 등 텃밭 공천의 경우 용산에 끌려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갈등 2라운드를 불러올 개연성도 있다.
다만 한 위원장이 상징성 있는 몇몇 지역구를 자신의 의지대로 공천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운동권 86세대 심판을 위한 자객 공천을 통해 프레임 전환 꾀하는 동시에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공천을 하면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최근 당이 유승민 전 의원 공천 여부를 검토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래 경쟁
한 위원장이 연착륙에 성공하고 여론의 호응을 받으면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의 여론조사가 차기 대권 후보 가능 여부와는 큰 상관이 없지만 국민의힘 총선 전략으로는 의미가 있다. 현 정부 심판론을 희석시킬 수 있어서다.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두 사람은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 한 위원장과 이 대표는 각각 26%를 얻었다. 이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 홍준표 대구시장이 각각 3%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처럼 차기 대통령을 두고 두 사람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윤석열 정부 심판론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효과가 있다. 김건희 여사 문제도 비슷한 효과를 얻는다. 설 명절 여론이 한 위원장, 이재명 대표, 이준석 대표 등 차기 대권 주자들에게 쏠리면 여권 입장에서 불리할 게 없다.
한 위원장이 일으킨 변화는 크다. 총선 패배론에 휩싸였던 여권에 '싸워볼 만하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수직적 당정 관계에 균열을 일으켰고, 공천 주도권을 당으로 가져왔다. 미래 정치를 두고 경쟁에 불 지폈다. 정치 입문 40여 일 만에 일으킨 변화다.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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