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저출생 재난을 멈출 좋은 정치인

홍준헌 경북부 기자
홍준헌 경북부 기자

20대에 결혼한 친구들의 자녀들이 하나둘씩 초등학교 책가방을 멘다. "하나는 아쉬워 둘을 낳기로 했다"던 친구들 역시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에 다 큰 아이의 모습을 걸어 놨다.

이들에게 "이번 선거에서 누굴 찍을지 정했느냐"고 묻자 "삶에 여유가 있어야 투표도 한다. 집값(주택대출)을 갚고 교육비를 내려면 맞벌이가 필수에다, 퇴근하고도 살림·양육에 눈코 뜰 새 없다"고 푸념한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오는 사람도 공약도 없다. 투표해서 삶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다. 늘 찍던 당을 찍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만 내놨다.

1898년 뉴질랜드에서 처음 도입한 국가적 보통선거의 역사가 약 130년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1948년 제헌(제1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76년째 보통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선거는 여전히 와닿지 않는다. 당면한 삶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허들 경주'에서 우리는 입시와 취업, 결혼, 출산 등 주요 이벤트마다 허들을 하나씩 넘으며 앞으로 달린다. 자녀를 낳은 뒤로는 허들을 하나라도 덜 물려주려고 더욱 아등바등 산다.

'허들 하나만 뺄 수 있다면' 더 오래 멀리 달릴 수 있을 테다. 이런 생각에 나는 2세 계획을 적극적으로 갖지 않는 '소극적 딩크(DINK, Dual Income No Kids·맞벌이하며 자녀를 두지 않음)'를 자처한다.

취업문이 좁아져 평균 취업 시기가 늦어지고, 월급만 빼고 모든 물가가 올랐다. '내 집 마련' 저축만으로도 힘겨워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출산휴가·육아휴직에 인색한 회사에선 사장님과 동료 눈치가 보인다. 이러니 출산은커녕 결혼과 연애 여부까지 고민하는 청년도 수두룩하다.

많은 청년이 이렇게 산다. 그 결과 저출생 문제도 재난급 이슈로 커졌다. 청년도 중·장년도 "지역을 넘어 국가 존립까지도 걱정된다"는 말을 내뱉는다.

이처럼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으나 마땅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지방 소멸 위기가 유독 심각한 경상북도가 그나마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해 저출생 전담 조직 설치를 예고하고 성금도 모으며 고군분투한다.

중앙 행정·정치의 영역에서 칼을 대야만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보일 전망이다. 다행이랄지 올 초 여야는 모두 총선 10대 공약에 '저출생 대책'을 담았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 보편화와 내 집 마련을 돕는 신혼부부 고액 장기 대출 등이 골자다.

그러나 막상 대구경북 총선 후보들의 선거 유세와 공약에선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선거 유세 시간을 어겼다"거나 "수사 외압의 원흉"이라거나 "고인이 된 전 대통령을 욕보였다"는 등의 날 선 목소리만 더 크게 들린다. 친구들이 선거에 등 돌리는 이유도 알 만하다.

제22대 총선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건 지난 대선부터 이어진 '덜 나쁜 사람 찍기'가 아니라 삶의 허들을 낮추거나 줄여 줄 '좋은 정치인' 선출이다.

좋은 정치인에게서 더 나은 삶을 그려볼 수 있다면 나를 비롯한 '딩크족'도 한 번쯤 출산을 고려하고, 바쁘게 사는 맞벌이 부모도 이번과 다음, 그다음까지 믿음의 표를 던질 것이다. 아이 울음소리가 다시 울리는 대구경북과 대한민국, 이번 선거가 그 선순환의 시작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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