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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오멜라스의 아이를 구원할 방법

홍준표 기자
홍준표 기자

오멜라스는 축복받은 도시다. 그곳에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그에 굴복하는 노예도 없다. 시민을 억압하는 법과 규칙, 비밀경찰도 폭탄도 없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공건물 지하실에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에 방치된 한 아이는 지능도 떨어지고 영양 상태도 안 좋아서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모든 사람은 아이가 거기 있다는 걸 안다. 두 눈으로 그 아이를 본 이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도시의 행복이 전적으로 아이의 불행에 달렸다고 믿기 때문에 아이가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행복해지면 도시 전체의 행복이 사라진다. 이것이 오멜라스 행복의 조건이다.

미국의 작가 어슐러 K. 르 귄이 1973년에 쓴 단편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내용이다. 작가는 이처럼 극단적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믿는 공리주의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집단 전체 이익을 위해 개인의 존엄성이 무참히 짓밟힐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헌정사상 가장 많은 국회의원(261명)이 공동 발의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달 25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달빛철도는 영호남을 동서로 연결하는 한반도 최초의 철도망이라는 '정치적 의미'뿐만 아니라 '남부 거대 경제권'이라는 새로운 초광역권 태동의 초석이라는 평을 받았음에도 정부와 서울 언론이 포퓰리즘, 재정 낭비 등을 이유로 도를 넘는 '딴죽걸기'를 했다.

같은 날 정부는 전국 광역급행철도(GTX) 시대 구상을 공개하며 '수도권 출퇴근 30분 시대'를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추진 중인 수도권 GTX-A·B·C 노선을 예정대로 착공·개통하는 것은 물론 D·E·F 노선을 신설해 수도권 남북·동서를 가로지르는 생활권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영·호남을 잇는 달빛철도 하나를 건설하지 못해 수십 년 동안 정부에 호소했고, 그마저도 수용되지 않아 특별법까지 제정해야 했던 현실과 사뭇 대조적이다. 오죽했으면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달 29일 "정부의 지방 살리기 정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며 "6조원이 투입되는 달빛철도를 안 해주려고 하는 정부가 수백조원이 들어가는 수도권 중심의 GTX를 구축하려는 것을 보고 정부의 지방 정책은 모두 헛된 구호였다는 것을 느꼈다"고 일갈했을까.

우리 사회에는 국가균형발전을 두고 지방에 대한 '퍼주기'라고 깎아내리는 통념이 있다. 이런 바탕에선 그 대상이 되는 지역민은 시혜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과연 그럴까?

시각을 돌려보자.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국내 인구 이동 통계를 보면 대구에서 8천 명, 경북은 5천 명이 빠져나갔고, 주요 유출 지역은 수도권이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저출생시대 어린이집·유치원 인프라 공급 진단' 보고서를 보면 4년 뒤 대구경북 어린이집·유치원 3곳 중 1곳이 문을 닫을 전망이다.

이 움직임의 끝이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바로 지역 소멸이다. 오멜라스의 방치된 아이처럼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지역 소멸과 균형발전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은 헌법에도 명시된 국토의 효율적 이용의 문제이지 표를 위한 것도, 열등한 2등 시민에게 은혜를 베푸는 문제도 아니다. 이것을 너무 쉽게 잊는다. 지역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기획할 수 있어야 하며, 정부는 지역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목소리를 크게 내도록 북돋아야 한다. 이것이 오멜라스의 아이를 구원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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