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불멸의 영웅과 위인이 될 수 없는 시대의 역설’ 극단 그린피그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

2008년 한국 플랫폼 시장에 상륙한 유튜브는 작년 월간 활성 이용자(MAU) 4547만 명을 기록하며 카카오톡을 제치고 국민 앱이 되었다. OTT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의 웹소설과 K-웹툰은 영화와 방송의 주요 콘텐츠로 활용되고, 한국형 유트브 콘텐츠들이 세계화되는 추세다. 콘텐츠의 정보는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전환되고, 짤툰, 쇼츠, 릴스 영상 플렛폼이 인기몰이 중이다. 이러한 현상이 MZ세대가 희곡, 연출, 공동창작을 주도하는 연극계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희곡에 의존하여 연출적 해석으로 무대를 이루던 재현방식에서 이탈, 퍼포먼스, 신체, 현존과 수행성, 관객의 참여를 독려하던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도 한발 더 나아가 서사, 장면, 배우의 연기와 무대구조까지 마치 연속되는 영상처럼 이미지로 연결되는 '쇼츠 연극'이 선보이고 있다. 성장부터 이러한 쇼츠 영상문화 환경에 익숙했던 MZ세대들의 독특한 표현방법일듯한데, 연극계에도 이러한 현상이 반영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극단 그린피그의 역사시비(歷史是非, 또는 역사 12) 프로젝트 중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공동창작, 최귀웅 연출, 예술공간 혜화, 기획, 스탭서울 노지상)는 89년생 이기석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다루고 있는 파편적인 생활 옴니버스, 다큐와 영상, 극중극의 유튜브 쇼츠, 배우들의 웹툰같은동작으로 중첩된 진행을 보여준다. 공연을 또 다른 영상 프레임으로 촬영하고 있는 듯한 무대를 통해, 89년생 이기석의 평범한 삶을 불멸의 영웅으로 것으로 만드는 작당을 보여준다. 황당한 설정이면서도 그것은 '위인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창작진들의 다소 진부한 질문과 닿아 있다. 역사에 기록된 위인들은 난세(亂世)의 영웅인 경우가 많은데, 89년생 이기석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난세일 수도 있다.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은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아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보통사람 이기석을 의도적으로 영웅화하는 것일 수 있다. 극단 그린피그는 정치, 사회, 인물 등 사회시스템에 갇힌 역사(歷史) 방식을 뒤집고 시비(是非)를 걸며 공동창작 방식으로 올해 12월까지 이 주제를 릴레이 방식으로 공연한다. 1월에는 공동창작, 윤한솔 연출로 <수치심>이 공연되었고, 3월에는 <양떼목장의 대혈투>(주은길 작·연출)가 공연된다.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이 극단 내 워크숍 성격이 강한 공연임에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MZ세대들의 쇼츠적 표현방식과 날것의 발언들을 연극으로 용해시키려는 시도가 서툰 만큼 참신했기 때문이다.

◆불멸의 위인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의 위인,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의 포스터 속 태극기를 향해 영웅처럼 버텨 선 인물을 볼 때만 해도 역사 속 위인과 영웅 중에서 짐작될 만한 인물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인간 이기석은 89년생, 36살로 울산 경상일보 창간 시기에 태어난 배우로, 그가 '불멸의 이기석'임을 짐작할 즈음, 이기석 스스로가 쓴 일기같은 하루가 파편적 옴니버스로 무대에 진행된다. 무대 정면은 이기석의 과거 기억과 현재의 일상이 영상으로 투사되는 스크린으로 활용되고, 극장벽에서 외부 계단으로 연결되는 공간은 유튜브 쇼츠가 보여지는 공간으로 독립되어 있다. 무대는 이기석의 과거를 떠올리는 기억과 꿈, 다양한 배경(주차장, 동네, 계단, 방, 외부 전경)으로 전환되는 미니멀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특히 무대 우측에 모니터를 한 대 세워 놓았는데, 이기석의 일상을 관찰하고 있는 시선이다. 마치 "연극이지만 이기석의 시간은 리얼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관찰 다큐의 이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데, 모니터 속 관찰자의 시선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공연은 시작부터 사주의 쾌를 보여주며 '사주팔자'(四柱八字) 해석을 거쳐 이기석의 사주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관객의 사주를 명리학으로 풀이해주면서도 "예언은 정확한 분석에 기초하더라도 저절로 오류가 된다"는 역사가 에드워드 H, 카아의 말을 들려주는데 이기석의 삶도, 인간의 인생도, 위인과 영웅의 팔자도 태어난 사주점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무대는 이기석의 과거 기억부터 현재의 시시콜콜한 생활의 풍경들로 전환된다. 이런 식이다. 영상을 투사해 주차장이 화면에 나오면, 이기석은 어린 시절 기아 캐피탈 광고 얘기며, 자동차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미니카,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던 기억들과 자동차를 좋아하면서도 운전면허를 늦게 딴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과거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현실처럼 전달되는데, 영상을 기억에 존재하는 플레시백으로 설정한 장면은 독립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가는 것 같다. 이기석의 현재와 기억을 영상과 연극의 극 중 장면으로 중첩시키고 분활하는 시도를 하면서도 무대 공간을 이탈하지 않는 점이 참신하다. 연극과 영상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공연이 많지만,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은 영상을 사용하는데 멈추지 않고 영상의 표현방식을 연극으로 끌어들여 이기석의 일상의 시간을 그려내는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공간 구조에서 관객들은 꼼짝없이 이러한 무대에서 89년생 이기석의 살아온 혹은 살아가는 시간을 볼 수밖에 없다. 이기석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동네까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공부하고 나온 뒤 "내일은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롯데 자이언트 최동원 투수를 소환하며, 러닝 430분, 담배 약 220개피, 음주 약 17일, 유튜브 시청 4126분을 돌파한 2023년 2월의 이기석은 야구선수의 전지훈련처럼 자신의 '스프핑 캠프' 훈련을 소개하는 식이다. 극 중 <루비와 나>의 에피소드에서는 반려견 루비의 '똥존'처럼 시시콜콜하고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기석 세차장 영상 편에서는 내레이션을 통해 서른 살이 되던 해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현대 i30의 추억과 특별한 추억이 없었던 싼타페와 이별한 기억을 소환하는데 프롤로그 영상 장면과 동일하게 두 대의 차는 기석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시간 속에 남겨진다.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에서 이기석의 일상이 전환되는 시간 사이사이 배치된,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장면이다. 그가 한 달 4126분간 시청한 영상들이 쇼츠 영상의 극중극 표현으로 보여진다. 백종원의 레시피, 미친 물가, 오류의 쇼츠,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 캠프, 전세 사기,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 그린피스 공익광고, 순대국집과 칼국수집 먹방, 국가고용지원센터 광고 등 무대 위 유튜브 영상은 마치 실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 것처럼 유튜브 로고와 채널을 입체화해 연속적인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보여진다. 유튜브 속 쇼츠의 짧은 감각으로 펼쳐지는 역동적인 한국 사회와 매일이 똑같은 지리멸렬한 이기석의 삶이 대비된다. 갑자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유튜브를 시청하는 무대 공간은 '켓세마네' 동산이 되고, 그 안에서 이기석은 꿈처럼 불멸의 예수가 된다. 희화화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에서 조롱의 대상은 이기석인가 아니면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는 한국사회인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은 연극 시파티처럼 놀이로 진행되고 새해 기념으로 "아차산 같이 가자"는 예수(이기석)의 말에 병사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장면을 만들고 예수가 된 기석은 "나는 이제 집에 왔어, 우와 여기 진짜 좋다"며 말한다. 기석과 이별한 자애가 등장해 "저는 사실 불안함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기석님의 은혜를 받고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고, 어떤 순간이 저에게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생겼어요. 그 힘이 바로 기석님이세요."라며 이기석을 셀프 위인으로 만든다. 마지막 쇼츠 장면처럼 빌라왕이 판치고 전세사기가 흔해지고 영끌해도 내 집 마련의 꿈은 접어야 하며 산타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기석은 연애, 결혼, 주거, 자동차, 미래 다섯 가지를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영웅이다. 보통사람 이기석이 한국사회를 견디는 영웅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셀프 위로 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시선으로 느껴진다.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은 이기석의 일상의 장면을 짤툰처럼 쇼츠화시켜 옴니버스 형식의 극으로 만든 방식이 젊어 보였고, 입체적인 장면화를 위해 배우의 몸(신체의 감각)으로 무대를 채운 감각이 돋보였다. 특히 반려견 루비를 인형 헝겁으로 배우 다리에 덮어 표현한 것은 위트가 넘치면서도 감각적이었다. 하지만 쇼츠처럼 맥락 없는 분절된 대사와 서사, 장면 구현을 위한 이미지에 치중한 연출의 시선, 과도한 비약 등은 연극성보다 아이디어가 우선 보이는 공연이 되었다. 역사(歷史) 방식을 뒤집고 연극으로 시비(是非)를 걸기 위해서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텍스트를 무대에서 퍼즐로 조합한다 해도 그림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퍼즐이 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큰 무대였던 만큼, 연출은 연극으로 사회를 향해 살아있는 시비를 거는 시도를 다양하게 하며 진짜 연극을 만들기 바란다. <진짜 연극-불멸의 이기석>을 쇼츠 연극으로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