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전 산업에서 생산력 향상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노동력은 여전히 산업의 근간이자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유럽의 성장 엔진이 멈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최대 경제국으로 꼽히는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0.3% 감소하는 등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다. 독일의 역성장 배경은 다양하지만 대대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파업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독일 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합 베르디(Ver.di) 소속 11개 공항 항공보안부문 조합원들(항공보안노조)은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24시간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함부르크 등 11개 공항에서 파업을 벌였다.
파업에는 뮌헨·뉘른베르크 등 바이에른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공항 보안검색 직원이 참여했다. 베르디 소속 항공보안 직원은 약 2만5천명이다. 독일공항공사연합은 이번 파업으로 항공편 중 약 1천100편이 결항 또는 지연됐다고 추산했다.
베르디 항공보안노조는 최근 고물가에 따른 생활비 부담과 직원 부족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량 등을 근거로 들며 임금 인상, 구체적으로 12개월 동안 매달 최소 200유로의 급여를 더 올리고 물가인상 지원금 성격으로 3천 유로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측 대표인 볼프강 피퍼는 "공항 보안 인력의 업무는 시급하게 필요한 기술을 갖춘 노동자들을 채용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항공 교통의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7일에는 독일 최대 항공사 루프트한자그룹의 지상직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들어갔다. 베르디는 "1차 경고파업 이후 더 오래 파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루프트한자는 파업 여파로 10만 명 넘는 승객의 발이 묶이는 등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고 항공권 취소·변경을 안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앞서 2일에는 독일 대중교통 분야 종사자 9만여 명이 근무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독일 전역의 버스와 트램 정류장이 멈춰 서면서 수백만 명이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문제는 독일에서 파업이 이번만이 아니며, 특정분야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업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독일 의사 수천 명의 파업으로 일시적인 의료 공백 사태를 불렀고, 11월에는 독일 철도기관사노조(GDL)가 임금 인상 및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 철도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또 GDL은 올해 1월 24일~28일 파업을 벌이는 등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마이클 그로엠링 IW 쾰른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홍해 상황(가자지구 분쟁)으로 인해 다른 운송 경로가 중단된 점을 고려하면 GDL 파업으로 인해 10억 유로 상당의 경제적 피해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독일 철강노조(IG메탈)도 11월에 아르셀로미탈과 티센크루프‧도이체 에델스탈베르케 등 3개 철강 생산 현장에서 파업에 벌이며 다른 노조와 마찬가지로 인금 인상과 근로 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결국 유럽 전역이 겪고 있는 노동력 부족과 물가 상승 문제가 독일에서 특히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독일 경제가 올해도 험난할 것"이라며 "독일은 높은 에너지 비용과 기록적인 높은 금리에 직면해 있고, 심각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맞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2035년에는 700만 명의 근로자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현지 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독일의 성장률이 올해 1분기에도 0.2% 쪼그라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 경제단체들 역시 전기요금 인하와 인프라 투자, 세제 개편 등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하는 중이다.
문제는 파업 사태가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악성 바이러스처럼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UPI통신은 지난 2일 영국 북아일랜드에서 교통공사 트랜스링크 노동자 8천명이 일일 파업에 나서 기차·버스 운행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에도 17만여 명이 소속된 공공부문 16개 노조가 북아일랜드 사상 최대 규모로 파업을 벌여 일부 공공기관이 마비됐다. 노조는 영국 다른 지역에 비해 북아일랜드의 공공부문 임금·근로조건이 크게 열악하다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핀란드도 파업 무풍지대가 아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동자 약 29만 명이 정부의 노동시장개혁·사회복지정책에 항의하며 2일부터 이틀간 파업에 돌입했다. 핀란드 전체 노동자가 약 229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파업의 여파 역시 컸다. 다수의 공장·상점·유치원이 문을 닫고 항공편 상당 부분이 운항을 중단했다.
유럽의 파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뉴스는 6일 독일과 영국·프랑스 등 교통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 장기화할 것이며 피해 역시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산업 원동력이 독일을 중심으로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유럽 경제 전반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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