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활동은 과거 많은 애국자를 낳은 동시에 또한 수 많은 반민자들의 출생지인 대구에 있어서의 활동을 크게 주목되고 있는 바이나 아직 본격적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작 2일 오전에는 과거 일제 시 도평의원이었고 중추원 참의였던 서병주가 자수하였다 하는데 이에 대해 도반민특위에서는 현재 조사 준비 중임으로 집에 가 있으라고 도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3월 3일 자)
1948년 제헌국회는 그해 10월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해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이듬해 2월에는 대구에도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조사위원회가 설치된 직후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낸 서병주가 자수를 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돌려보냈다. 민중들은 제 발로 찾아온 친일파를 바로 조사하지 않은 데 대해 의아해했다. 반민특위의 불안한 출발은 그 이전에 속속 예고됐다.
'지난 14일 반민특위에서는 방의식을 석방하였는데 이번에는 전번 체포된 김우영은 병으로 보석하여 시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에 있다 한다. 이것으로 현재까지 보석된 자는 박중양, 방의석, 김우영 등 3명이다. 반민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지난 12일 반민자 박중양을 비롯 방의석을 보석하고 14일에는 또다시 김우영을 보석하였다 하는데 동 14일에는 박흥식도 보석 신청을 하였다 한다.' (남선경제신문 1949년 2월 16일 자)
조선 민중이 일제에 항거한 3‧1 만세운동은 해방 후에도 의미가 컸다. 3‧1절이 다가오면서 반민특위를 통한 민중들의 일제 청산 목소리는 커졌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일제 청산의 결기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기사에 난 방의석은 조선총독부 참의를 지낸 친일 기업인이었다. 박흥식은 서울 종로에 세운 화신백화점으로 갑부가 되어 일제 총독부에 협력했다. 이들은 병보석 등으로 조사 도중 석방되었다. 반민특위는 비판을 의식해 외국 도피나 조사에 방해 우려가 없으면 처음부터 불구속으로 조사할 것이라 밝혔다.
대구에서도 친일 반민족 부역자들이 하나둘 검거됐다. 그 중의 대표적 인물이 박중양이었다. 1949년 1월에 대구 침산동 자택에서 체포되었다. 박중양은 애초 대구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1906년 대구 군수가 되었고 이태 뒤에는 경상북도 관찰사를 맡았다. 그는 벼슬 내내 일본 이익의 첨병 노릇을 했다. 대구 군수로 있을 때는 조선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구읍성을 파괴했다. 일본 이익의 끄나풀 노릇을 했다.
그는 박작대기로도 불렸다. 들고 다닌 지팡이 때문이었다. 그 지팡이는 '개화장'이라고도 했다. 개화했다는 사람들이 자랑삼아 들고 다녔다는 의미였다. 으스대며 들고 다닌 일종의 신분증 같은 물건으로 조선 민중과 다르다는 표시였다.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유학 중에 야마모토 노보루로 개명을 한 것과 맞닿아 있었다. 일제 후반기 창씨개명이 벌어지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일본을 추앙하며 일본인 노릇을 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는 해방 직전 조선인 몫의 일본 귀족원 의원까지 지냈다.
반민특위에서의 체포와 석방, 재판을 반복했던 그는 특위가 해체되면서 최종적으로 풀려났다.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당시 반민특위 조사를 받고 감옥으로 가 처벌을 받은 경우는 고작 14명에 그쳤다. 친일파로 지목된 대부분은 처벌은 커녕 재판조차 받지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박중양은 그 이후에도 일제 시절을 그리워하며 떵떵거리며 살았다. 회고전 형식의 '술회'는 그렇게 쓰인 글이었다.
"시대변혁의 희생양이다." 친일 행적에 대해 추궁하자 그가 내뱉은 변명이었다. 해방 후에도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뿌리가 같다고 했다. 친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였다는 얘기다. 스무날 뒤면 105주년 3‧1절이다. 오늘 그에게 과거 행적을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박작대기는 십중팔구 더 큰소리로 똑같은 변명을 하지 않겠나.
박창원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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