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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28> 구약의 ‘룻기’ : 미적 투신 - 여성의 막판 베팅

이경규 계명대 교수

성경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성경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이경규 계명대 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수

'룻기'는 4장밖에 안 되는 초단편이지만 문학성이 뛰어나고 시의성이 돋보이는 성경이다. 룻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 발단·전개·위기·절정의 흐름을 압축하고 있고 언어는 세련되고 시적이다. 가부장제가 지배적인 시대에 여성이 서사를 주도해가는 양상이 놀랍고도 흥미롭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룻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섭리를 이행한 신앙인이지만 문학적으로 보면 진선미를 구현하는 아름다운 영혼(schöne Seele)이다.

룻은 자기 나라(모압)에 이민 온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하지만 남편을 잃고 자식도 없이 시어머니와 살고 있다. 이 시어머니가 비극적인 여인 나오미다. 나오미는 이스라엘에 기근이 심해 모압으로 살러 왔으나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잃는다. 자식도 없이 청상과부가 된 두 며느리와 살던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형편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귀국을 결심한다. 두 며느리에게는 고향에서 재혼해서 잘 살라며 이별을 고한다. 한 며느리는 떠나지만 룻은 나오미를 따르기로 결단한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 나도 죽고 그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고백이라면 몰라도 젊은 며느리가 박복하기 짝이 없는 시어머니에게 하는 말로는 좀 과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나오미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 때문인 것 같다. 룻은 어떤 위대한 신이 나오미와 함께한다는 것을 감지했음이 틀림없다. 이것을 진리라고 할 수 있다면 룻은 일차적으로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건다.

이스라엘로 온 두 과부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다행히 보리 베는 철이라 룻은 보리 이삭을 주워 끼니를 잇는다. 젊은 이방 여자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신을 다해 이삭을 줍는다. 이 눈물겨운 모습이 일꾼들에게 각인되고 밭 주인인 보아스에게도 알려진다.

네가 남편이 세상을 뜬 뒤에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었고 고향을 버리고 부모를 떠나 낯선 이 백성에게로 왔다는 말을 들었다.

이 목숨을 건 선행이 진리에 이어 룻의 전인성을 채우는 두 번째 요소다. 자식도 없는 젊은 과부가 새 삶을 도모하지 않고 시어머니에게 헌신하는 것은 보통 인간애가 아니다. 그러나 眞과 善 만으로는 2% 부족하다. 美(에로스)가 필요하다. 어느 날 밤 룻은 나오미의 코치에 따라 "목욕을 하고, 향수를 바르고, 고운 옷으로 단장한 뒤" 보아스의 보리밭 침대로 들어간다. 룻을 발견한 보아스는 깜짝 놀라지만 곧 반갑게 말한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갈 만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그대가 보여 준 갸륵한 마음은 이제까지 보여 준 것보다 더욱더 값진 것이오.

보아스가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오미가 룻을 꽃단장시켜 그의 침대에 들여보낸 이유가 뭐겠는가. 신앙과 선으로 신뢰는 얻었으나 최종결판은 美로 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아스와 결혼한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예수의 계보에 올라가는 영예를 얻는다. 요컨대 룻은 온몸으로 진선미를 구현하며 괴테가 말한 '영원한 여성성'의 모델이 된다. 특히 마지막의 미적 투신은 화룡점정의 베팅으로 독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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