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4>오뎅과 어묵 이야기

전골요리 '오뎅'…가마보코·무·곤약 넣고 보글보글, 간소화 한 어묵꼬치 서민에 보급
속 풀리는 겨울 간식 '어묵'…대구선 콩나물·고춧가루 팍팍, 서문시장 칼칼한 맛

우린 어묵과 오뎅의 차이점을 잘 모르고 있다. 오뎅은 가마보코, 무, 곤약, 토란 뿌리, 삶은 달걀 등과 함께 국물에 푹 삶아낸 일종의 전골 요리. 사진은 교토미야코 대봉역점의 오뎅우동.
우린 어묵과 오뎅의 차이점을 잘 모르고 있다. 오뎅은 가마보코, 무, 곤약, 토란 뿌리, 삶은 달걀 등과 함께 국물에 푹 삶아낸 일종의 전골 요리. 사진은 교토미야코 대봉역점의 오뎅우동.

부산 삼진어묵의 모듬 어묵.
부산 삼진어묵의 모듬 어묵.
12년 전 대구에 도전장을 낸 고급 어묵의 선두주자인 부산오뎅 강돌이 매장 앞 어묵 난전 모습.
12년 전 대구에 도전장을 낸 고급 어묵의 선두주자인 부산오뎅 강돌이 매장 앞 어묵 난전 모습.
오뎅인 듯 어묵인 듯, 이들은 겨울날 서민들에게는 국물을 맘껏 들이켜면서 손쉽게 속을 덥힐 수 있는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오뎅인 듯 어묵인 듯, 이들은 겨울날 서민들에게는 국물을 맘껏 들이켜면서 손쉽게 속을 덥힐 수 있는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교동과 대백 앞 빨간오뎅을 한 단계 진화시킨 서문시장 콩나물오뎅.
교동과 대백 앞 빨간오뎅을 한 단계 진화시킨 서문시장 콩나물오뎅.
일제강점기 1세대 대구 일식요리의 한 흐름을 잇고 있는 종로초밥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오뎅백반. 대구의 입맛이 절충된 게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1세대 대구 일식요리의 한 흐름을 잇고 있는 종로초밥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오뎅백반. 대구의 입맛이 절충된 게 특징이다.
서문시장에서 콩나물오뎅 시대를 연 성주 출신 사장 양창원 씨 내외.
서문시장에서 콩나물오뎅 시대를 연 성주 출신 사장 양창원 씨 내외.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이 교차한다. 혀도 재빨리 그 흐름을 간파한다. 그 지점에서 나는 특화된 어묵을 가진 두 군데 식당을 품어 본다. 대백프라자 옆 교토미야코 대봉역점, 그리고 시내 종로초밥. 전자는 '오뎅우동(1만4천원)', 후자는 '오뎅백반(1만원)'이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이다.

이자카야 스타일의 산시로(三四郞)와 함께 본토 일본 맛의 한 흐름을 잡아가는 교토미야코의 존재감을 그동안 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초겨울에 처음 그 집의 오뎅 맛을 보곤 이내 매료되고 말았다. 고수의 맛이었고 일본 현지 못잖았다. 일본 전통요리(和食)의 진수랄 수 있는 이다바(板場‧조리장) 정신이 느껴졌다. 가마보코, 곤약, 유부, 완자, 우엉어묵 등 10여 가지 주재료를 몽땅 일본 현지에서 공수해 온다. 맛국물과 각종 어묵, 두 질감 간의 조화로움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쉽잖은 요리술이다. 먹는 내내 눈을 뜨지 못했다.

종로초밥은 일제강점기 대구 1세대 일식 요리사의 노하우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향촌동 선술집 '할매집'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권영수(일제 때는 '곤도상'으로 불림), 향촌동 미화의 이종화, 서문교회 옆 미림의 라경수, 향촌동 주부센터 김정식 등과 맥을 같이 하면서 대구 일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아들 장원용 씨는 아버지와 함께 움직인다. 여기 오뎅백반은 한국 궁중음식의 한 지평을 보여주는 신선로의 울림이 보인다. 한국식 오뎅탕의 한 갈래랄까. 두부, 곤약, 무, 계란, 다진 소고기를 감싼 양배추 보쌈, 그리고 매일 달라지는 소의 특수부위(스지, 연골, 수구레, 볼살 등).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료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는 가짓수가 많이 줄었다. 오뎅의 진미를 아는 단골이 많이 줄어든 탓일까. 조만간 웃돈을 주고서라도 특제 오뎅을 먹어봐야겠다.

◆퓨전 어묵 시대 개막

이 둘 옆에 몇몇 어묵집이 더 가세한다. 납작만두의 성지 중 한 곳인 교동시장은 매콤한 양념오뎅이 탄생한 곳이다. 그러다가 그 맛이 대백 옆으로 건너가 2003년 여름 '빨간오뎅'으로 피어난다. 신천시장에서 태어난 '할매표 불떡볶이'와 궤를 같이한 것. 궁중갈비찜이 고춧가루 들어간 동인동찜갈비로 변형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게 상경해 서울에서도 신드롬을 일으킨다.

이 흐름을 잘 활용한 두 가게가 요즘 서문시장 핫플로 활보한다. 24년 전 서문시장으로 진출, 형의 기술을 전수한 성주 출신의 양창원 씨가 차린 '콩나물오뎅', 순살 비율을 90%로 격상시킨 프리미엄 부산오뎅으로 12년 전 대구에 도전장을 내민 '부산어묵강돌이' 대구점.

콩나물오뎅은 미더덕찜을 벤치마킹한 것. 꽃게와 미더덕, 새우 등이 들어간 해물육수, 떡볶이용 작은 어묵, 그것과 잘 어울리는 굵직한 콩나물과 대파, 마지막에는 고춧가루를 고명으로 어묵 위에 수북하게 뿌려놓는다. 어묵찜 같다. 소문을 듣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장 방문 때 여기를 찾았다.

강돌이는 부산의 메이저급 오뎅 브랜드인 환공, 삼진, 고래사 등이 부산역을 중심으로 '어묵베이커리카페' 특수를 누리기 전에 발 빠르게 조기살을 과감하게 투입해 밀가루를 넣지 않은 고급어묵시대를 견인한다.

현재 부산은 어묵의 고장답게 40여 어묵 생산 업체들이 부산어육제품공업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삼진어묵은 2013년 어묵크로켓, 단호박어묵, 치즈말이어묵 등 갓 튀긴 어묵을 파는 베이커리카페를 부산역에 오픈해 선풍을 일으킨다. 뒤이어 환공, 고래사 등도 줄을 잇는다.

◆헷갈리는 오뎅과 어묵

자, 여기서 오뎅과 어묵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 어묵의 탄생지는 부산. 물론 부산과 함께 대구도 일제강점기부터 최대 소비지 중 한 곳.

당연히 국내 한국 어묵의 원전은 일본. 일본 이름은 '가마보코(蒲鉾). 부들 꽃대 모양을 닮았다. '봉어묵'이라고도 한다. 젊은 세대들은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분식집에서 파는 어묵을 속어로 '오뎅'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의 오뎅은 별개의 음식이다.

한국에서 먹는 한국식 어묵과 가마보코는 차이가 있다. 가마보코와 맥을 같이하는 게 바로 '치쿠와'(竹輪)이다. 이것은 어육을 다져 으깬 것을 대나무 등의 봉에 붙여서 굽거나 찐 어묵의 하나이다. 봉을 뽑아내면 가운데가 빈 통의 형상이 되어, 그 모습이 대나무의 동그란 모습을 닮았다 해서 그 이름이 붙은 것이다. 시중에 나온 건 불에 구운 형태가 대중적이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서는 것은 '나루토마키'. 붉은 식용물감으로 착색한 으깬 어육을 다른 흰 어육과 함께 말아서 저민 자리가 마치 소용돌이처럼 보인다.

일본 어묵은 중국의 딤섬처럼 엄청난 종류를 보유한다. 그 통칭은 '네리모노'. 어육 등을 으깨 묵처럼 굳힌 모든 종류를 의미한다. 제조방법에 따라, 찌는 가마보코, 굽는 치쿠와, 튀기는 텐푸라 등으로 분화된다. 그런 어묵이 일제강점기 한국의 '국민 음식'이 된다.

실제 나도 학창시절 가마보코, 오뎅, 간토, 덴뿌라 등의 이름을 듣고 성장했다.

학교 앞 불량식품 가게에서 쪽자(달고나)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군것질이 간토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어묵꼬치. 간토 한 개 먹고 왜간장으로 맛을 낸 간또 국물을 주인의 핀잔을 들어가면서 훌훌 마셨다. 어떤 어른들은 이 간토나 덴뿌라를 모두 가마보코라 불렀다. 그러니 헷갈릴 수밖에.

아무튼, 일제강점기나 해방공간에서는 가마보코가 어묵의 대표격. 부산의 사정이 알고 싶어 부산의 대표격 식객인 최원준 시인으로부터 도움말을 들었다.

초량에 왜관이 설치되면서 가마보코가 처음으로 부산에 등장한다. 에도시대부터는 가마보코가 쪄서 조리하는 방식으로 정착된다. 반죽한 생선살을 반달 모양으로 쪄낸 '한펜'(半片)이 대표적이다.

오뎅은 이 가마보코를 무, 곤약, 토란 뿌리, 삶은 달걀 등과 함께 국물에 푹 삶아낸 일종의 전골 요리이다. 원래는 두부, 곤약 등을 꼬치에 꽂아 된장을 발라 구워 먹던 '덴가쿠'(田樂)라는 음식에서 기원했다. 덴가쿠는 모내기 때 풍년을 기원하며 행하던 춤과 노래, 즉 '들놀음'이었다. 그때 야외에서 구워 먹던 음식 또한 덴가쿠라 했다.

이후 에도시대에 상업이 발달하자 편하고 빠르고 맛있는 패스트푸드식 덴가쿠를 생각해낸다. 덴가쿠를 다시마 국물과 진간장으로 간을 맞춰 탕으로 팔았는데, 이것이 오뎅이다.

◆ 떡볶이 품은 대구어묵

오뎅은 일제강점기 부산 중구 부평시장 인근 일본인 대상 요정의 고급 안주로 등장했다. 당시 아주 비싼 음식으로 일본인 관리나 사업가, 조선 상류층이 주로 맛본 음식이다. 이후 이를 간소화한 어묵꼬치가 서민에게 보급되면서 오뎅이라는 요리가 '오뎅 속 어묵'을 칭하는 단어로 변용됐다. 일본에서는 이 오뎅을 도쿄 지역인 '간토(關東) 지방에서 먹는 음식'이라 하여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關西) 사람들이 '간토다키'로 불렀다. 간토다키를 한국인들은 간토라 했다. '국물 안에 들어가 있는 어묵'이다.

어묵은 덴푸라와도 혼용됐다. 에도시대 말 류큐국(현 오키나와)과 교류가 있던 규슈의 사쓰마(가고시마)에서 기름으로 튀겨내는 요리법으로 가마보코를 만든 것이 시초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서는 값싼 생선을 통째 갈아 밀가루와 반죽한 어육을 튀겨서 팔았다. 이 튀김어묵이 현재 부산어묵의 원형이다.

현재 어묵의 성지인 부산은 경쟁적으로 베이커리카페를 중심으로 선물용(모듬어묵 세트)으로 많이 유통시키고 있다. 대구의 어묵시장은 독특하게 매운 떡볶이와 납작만두의 매력포인트를 적극 활용해 매콤 양념어묵의 다양한 변용태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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