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대구역에서 집으로 가려고 차표를 끊으려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서 온 것 같은 낯선 여인네가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공주 가려면 어디서 타야 하는지" 물어왔다.
아는 몇 가지 영어 단어를 동원해 열차를 타려면 지하철이 아니고 위쪽 기차역을 이용하라고 더듬더듬 설명했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그 여인네의 우리말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광주'를 '공주'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코레일 앱을 살펴보고 나서 대구역에는 광주 가는 차편이 없으니 지하철을 타고 동대구역으로 가면 광주행 기차를 탈 수 있다고 알려줬다.
서로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기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기도 했지만, 누구도 들은 척도 안하고 바쁘게 지나갈 뿐이었다. 그 여인네를 동대구역까지 데려다주기로 작심하고 "Let's go together!"라고 외치고는 앞장섰다. 이윽고 동대구역에 그 여인네를 내려주고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려는데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망연자실 서 있을 뿐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Let's go together!"라고 외치고 동대구역 대합실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 그녀를 앞서 타게 하고 조금 거리를 두고 뒤떨어져서 갔다. 그 순간 여인네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뒤로 발라당 나자빠졌다. 내가 황급히 다가가 잡아주지 않았으면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히거나 머리카락이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끼이는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작은 체구로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끌며 배낭을 메고 또 다른 한 손에도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 긴장까지 잔뜩 둘러메고 있다가 갑자기 균형을 잃은 모양이었다.
나는 동대구역 매표창구 앞에서 또 한 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광주 가는 차편이 바로 있기는 했으나 오송에 가서 환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여인네에게 환승에 관해 설명할 도리가 없어 매표창구 여직원에게 광주 가실 분이 외국인이라서 우리말을 못 알아들으니 영어로 상세한 안내를 부탁했으나 거절 당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다른 안내자를 불러달라고 해도 그런 사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나라 철도청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됐던가? 별수 없이 다시 고속버스터미널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광주행 표를 끊게 해 홈까지 안내한 다음에 비로소 안심되었다. 그제야 그 여인네의 표정이 밝아졌다. 돌아서는데 환하게 웃는 얼굴로 하염 없이 손을 흔드는 표정이 "Are you Jesus? (당신은 예수입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돈도 아니고 능력이나 재능도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가 모두 작은 예수가 될 때 가능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새해에는 최소한 하루 한 가지 선행을 하며 살기로 작정해본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돼라"고 어디서 그런 명령어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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