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모양의 알 수 없는 것에 쫓기는 두 남녀가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 속으로 목을 숨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작은 캠코더 하나를 발견한다. 캠코더로 바라본 세상 속 그들은 안정되고 편안해 보인다. 그 안의 세상 속 행복은 사실 매우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매우 특별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도 잠시일 뿐 그들은 다시 큐브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이 입었던 옷이 마치 산처럼 커다랗게 쌓여있던 옷더미 아래로 떨어진다.
이는 최근 발매된 아이유(IU)의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의 내용이다. 영화 같은 영상 속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내포돼 메타포나 결말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뤄지며 이슈가 됐다. 그런데 이 안에는 미술 작품을 오마주한 것도 있다. 주인공 연인의 불행의 배경이 되고, 죽음을 의미하는 듯한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가 된 '옷 무덤'이다. 이렇게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만난 미술은 더욱 반갑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1944-2021)는 2010년 파리 그랑팔레의 기획전에서 '페르손(Personnes)'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설치미술로 공간 전체를 작품처럼 사용했다. 바닥에는 구역을 나눠 옷들이 깔려있으며, 한쪽에는 거대한 높이의 수북이 쌓인 옷더미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크레인이 설치돼 있다. 이 크레인은 자신이 마치 운명의 심판자라도 된 듯 옷더미를 그저 집히는 대로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구역이 나누어진 길을 따라 관람객들은 옷더미들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다.
유태인 출신인 볼탕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자랐으며, 전쟁 속 다양한 죽음을 목격했다. 이러한 민족적, 가정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는 '삶과 죽음'을 주된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존재나 부재의 경계에 관한 관심을 중심으로 볼탕스키는 주로 오래된 사진이나 물건을 사용해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작가의 배경과 의도를 이해한다면 '페르손'의 옷더미들이 집단적 학살, 또는 죽음, 소멸 등을 뜻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무작위로 옷을 집었다가 놓는 것을 반복하는 크레인은 삶의 우연적 요소이다. 수많은 죽음을 바라보며 볼탕스키는 이러한 우연이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또한 당시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창백한 빛이 옷더미 위로 쏟아지는 극적 효과와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에 난방을 가동하지 않음으로써 만들어진 한기가 죽음의 분위기를 더했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이곳 사이를 거닐 수 있게 하면서 소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결국 제목의 뜻처럼 '사람들'이 생략된 '아무도 없는' 부재의 상태는 작가가 만들어 낸 오브제의 흔적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아무도 없지만, 삶의 흔적은 그를 사랑했던 이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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