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사무엘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이 출간되어 문화 또는 문화의 정체성이 탈냉전 세계에서 전개되는 결집, 분열, 갈등의 양상을 규정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정치는 문화와 문명을 따라 재편되며 앞으로의 갈등은 사회적 계급, 빈부, 경제적인 집단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임을 예고했다.
이어 1997년 미국과 러시아에서 지정학 관련 서적 2권이 출간되었다. 향후 세계의 패권 질서가 어떻게 전개될 지를 예고한 전략서였다.
미국에서 발간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교수의 '거대한 체스판'은 번역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두긴 교수가 쓴 지정학의 기초(Основы геополитики)는 한·러수교 10주년을 맞이하여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라는 제목으로 편역 발간되었다. 300여 부 제작되어 국내 주요 대학교 도서관과 연구소 등에 한정 배포되어 덜 알려졌다.
◆거대한 체스판과 지정학의 기초는 패권유지 및 향방 제시
두 책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거대한 체스판'이 냉전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세계정부의 역할을 위협하는 유럽의 탈미 움직임과 중국의 성장, 그리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반미운동에 대하여 극복 방안을 제시한 전략서였기 때문이고 알렉산드르 두긴의 '지정학의 기초'는 러·우전쟁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선명하게 제시하였기 때문이었다.
브레진스키는 해양국가 전략을 대표했고 알렉산드르 두긴은 대륙국가 전략을 대변하고 있다. 해양국가라 함은 단순히 바다에 둘러싸인 국가보다는 국토의 위치, 넓이, 인구, 해안선의 형상, 입지조건이 좋은 항구의 유무 등을 고려하되 바다에 사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국민이 존재하느냐 유무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대표적인 대륙국가는 러시아와 독일인데 단순히 대륙에 걸쳐있는 나라만을 뜻하는게 아니라 군사사상이 해양국가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육전의 지위가 우월한 나라를 가리킨다.
기원전 역사상 대륙국가의 대표는 로마제국이었고 해양국가 대표국은 카르타고였다.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는 로마에게 멸망했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오면서 몽골제국이 대륙국가로서 위용을 떨쳤고 1588년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래 대영제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수세기를 풍미했다.나폴레옹이 영국에 도전했다가 트라팔가르해전에서 실패하고 영국이 장악한 이베리아 반도를 배후에 둔 채로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가 몰락하였다.
산업혁명 후 독일 3B(비스마르크 실각 이후 독일의 제국주의 정책의 기본 노선. 3B는 독일의 베를린, 터키의 비잔티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의미하며, 독일은 3B정복을 통해 독일-동유럽-발칸-페르시아만을 연결해 세력 팽창을 꾀함.) 와 영국의 3C(영국이 카이로(Cairo), 케이프타운(Cape town), 캘카타(Calcutta)를 점령한 후 연결하여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실행한 정책) 정책이 부딪힌 것이 1차대전이었고 독일과 일본의 패권장악 시도가 2차세계대전이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헤게모니는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소가 냉전으로 대립하였다가 1991년 소련몰락 후 미국 단극체제가 유지되다가 2016년경 중국의 부상과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러시아의 국력 재건을 통해 다극체제로 변하였다.
◆미국은 4개제국의 패권도전을 막아 강대국으로 부상
미국은 독일제국과 나치독일, 소련이 유럽을 지배하는 것을 봉쇄했고 일본제국과 소련이 아시아를 장악하려는 것을 막았다. 미국은 4개 제국의 패권도전을 막아 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현재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저지하고자 한다.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조했던 전략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이었다. 그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를 장악해야하며 독일에 주목하였다.
푸틴의 패권 쟁취는 사상적 기반이 알렉산드르 두긴의 '신유라시아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밝혔다. 두긴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베를린-모스크바- 도쿄-테헤란 주축을 구축하여 유라시아 패권을 통합하고 이 동맹체를 기반으로 미국의 해양세력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다. 러시아가 주축이 되어 유라시아 전반의 분할 관리를 주장한 것이다. 그는 독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프로이센 영토였던 칼리닌그라드를 독일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이외의 유럽지역인 동부 및 중부유럽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독일과 프랑스의 반미적 관점을 조장하며 양국간의 협력을 통해 유럽 전역에 반미 스탠스를 강화하여 유럽을 러시아와 독일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을 배제하여 해양세력인 앵글로 색슨과의 대립구도를 명확히 하였다.
두긴은 동아시아에서 영미 해양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중국 또는 일본과 협력을 강조하고 동맹관계를 제안하였다. 푸틴은 북방영토 문제를 갖고 대일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러·우전쟁으로 중단되었다.
◆러·우전쟁은 미국 패권질서에 대한 러시아의 도전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하면서 미국 일방의 단극질서를 종식시기고 신세계질서를 탄생시키고자 '규칙기반의 국제질서'를 비판하였다. 특별군사작전은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자유주의적 패권국가인 미국 중심에서 다극 세계로 나아가는 시작으로 본다. 새 세계는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 낸 패권질서가 아니라 인민주권과 문명, 자신의 역사적 운명과 가치와 전통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에 기반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장관 블링컨은 이에 대하여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목적을 달성한다면 이는 기존의 국제 규칙인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주권존중, 영토불가침, 인권 등에 대한 도전이며 러시아의 승리는 '힘이 정의'가 되는 세계로 돌아가기에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이 러·우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이유는 유럽의 대러시아 에너지 종속을 종식시키고 군비를 증강시키는 동시에 독일의 제조산업을 주저앉히며 전략적 기회를 포착하여 주도권을 잡기 위함인데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는 상당 부분 충족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외교의 거대한 환상"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확산하려는 패권정책이 민족주의와 정체성이라는 힘과의 싸움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현실주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지정학적인 블록간 경쟁은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니라 치열한 이익 다툼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분명한 사실은 1971년 미국이 브레튼우즈 협정인 달러의 금본위제 이탈 후 미국의 패권이 도전을 받고 저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궤도 밖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나토의 동쪽으로의 확장이라는 지정학을 무시한 대가가 러·우전쟁을 야기한 직접적 원인이다. "실력행사를 억제하는 기술"이 외교인데 이는 상대의 입장과 국가이익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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