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잊힐 리 없다. 지난 총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공천 파동이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다. 이른바 호떡, 막장이라 불린 문제적 공천이 주로 대구경북에서 횡행했다. 심사의 기준과 원칙은 사라지고 계파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공천권자들의 셈법만 가득했다. 대구경북(TK) 지역은 누구를 내보내든 공천만 주면 어차피 당선될 것이라 여기는 속내가 뻔히 보였다.
그 가운데 지역민의 의중은 끼일 틈조차 없었다. 공정한 평가를 기대하며 유권자를 찾아다니던 예비 후보자들은 뭘 해보지도 못한 채 하릴없이 사라져 갔다. 그들은 애당초 유권자가 아니라 권력자의 의중을 좇아야 했을지 모른다. 대구경북의 지역민들이 화가 난 건 당연했다.
전전 총선에선 소위 '진박 감별사'들의 전횡도 참고 견뎌야 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아무튼 2020년 4월 15일 21대 총선, 미래통합당은 그렇게 하고도 대구경북에서 이겼다. 전국 의석수 기준으로는 참패였지만 TK 지역에선 지역구 의석 거의 전부를 가져갔다.
반면,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과 호남 지역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부산, 울산, 경남에서도 비교적 선전했으나 대구경북에선 단 한 개의 의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김부겸 그 이름만으로도'를 외치며 2014년 지방선거에 등장한 이래 기어이 지역의 벽을 허물어냈던 김부겸 의원조차 충격적인 스코어 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민주당과 그 후보들을 지지했던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은 허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중앙당이 선거 때마다 TK 지역은 아예 괄호 밖으로 내놓는 느낌이 든다며 씁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TK의 유권자들은 한쪽은 다수라서 무시당하고 한쪽은 소수라서 외면당하는 처지가 된 셈이었다. 이래선 곤란하다. 선거는 유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고 자존을 드높이는 일련의 과정이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동력이 거기서 나온다. 지난달,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윤심 공천'에 대한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며 공정한 공천,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까진 어느 정도 그의 말처럼 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늘 그랬듯 TK 지역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TK 지역 선거구 25곳 중 11곳이 아직 단수든 경선이든 정해진 것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더구나 "지금부터 고차 방정식으로 들어가고 있다. 경우에 따라 인력을 재배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 등, 정영환 공관위원장의 말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는 지역민의 의사, 지역 정서가 공천의 첫 번째 고려 사항에서 이미 제외되었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주권의 의미가 유독 TK에서 또다시 퇴색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민의힘은 오로지 유권자의 의중만을 좇을 수 있도록 소속 후보들을 권력자의 의중으로부터 놓아 주어야 한다. 또한 말로만 찬사를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지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투명한 공천으로 지역 유권자에 대한 존중을 먼저 보여야 한다.
민주당은 결과를 떠나 TK 지역의 지지자들에게 백배 고마워해야 한다. 지역에서 민주당 간판을 내걸면 못해도 20% 안팎의 지지율은 나온다. 그런데 그 20%는 민주당 불모지 같은 곳에서 어찌 보면 눈물겹도록 힘들게 애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디 가서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함부로 말도 못 하고 산다.
자칭 소수의 국민까지 살뜰히 챙긴다는 민주당이 정작 이들을 홀대한다면 그건 자가당착이다. 아울러 다른 당에선 '서진'(西進)하겠다는 말이라도 하는데 민주당은 왜 그런 것조차 없는지, TK 지역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TK 사람들 또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선거 때마다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한다면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유권자인 지역민에게 있고, 그것을 바로잡을 힘 또한 지역민 스스로에게 있다. 그러니 신성한 주권을 호락호락 내주어선 안 된다. 화가 나도 참고 또 참다가 급기야 오불관언하는 것은 주권자의 미덕이 될 수 없다.
때론 목청을 높여야 하고 경고도 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회초리도 들어야 한다. TK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바로잡을 것은 미리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게 TK 지역민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TK 유권자 스스로 일궈내야 한다.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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