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풀이 있는 맑은 하천 중류에 사는 '가시고기'라는 민물고기가 있다. 그런데 그 가시고기의 수컷이 아버지로서 보여주는 숭고한 부정(父情)은 감동을 넘어 사뭇 가슴이 먹먹하다.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난 다음에 그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과정은 오롯이 수컷의 몫이다. 둥지 청소는 기본이고, 가슴 지느러미로 쉼없이 부채질을 하면서 알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
알을 탐내는 침입자가 나타나면 등에 가시를 곤두세운채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렇게 알 속의 새끼가 자라서 밖으로 나오는 보름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입이 헐고 몸빛이 바래도록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다. 마침내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에게 둥지를 떠날 즈음이면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의 몸조차 새끼들의 영양분으로 제공한다. 그래서 가시고기의 수컷은 끔찍한 부성애의 상징이 되었다.
20여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아버지의 가없는 사랑을 그린 조창인의 장편소설 제목이 '가시고기'였던 이유이다. 아버지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스스로도 간암 말기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기어이 자신의 눈(각막)을 팔아 골수이식 수술비를 마련하고 아들의 건강을 되찾아준다.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이혼한 아내에게 보낸 후 가시고기처럼 생을 마감한다,
작가 조창인이 이 소설을 쓰게 된 일화도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고 한다. 곡절 많은 인생의 숱한 갈림길에서 방황을 하며 시나브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그 빈자리를 절감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에게 실제로 불치병을 앓는 아들을 둔 오랜 친구가 있었다. 속내를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던 친구가 어느날 소주 한 잔을 나누며 토로한 한마디가 가슴을 저며왔다.
"아들을 위해 아무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친구가 감당했던 고통과 지울 수 없는 희망을 떠올리며 소설 '가시고기' 집필에 매달렸던 것이다. '결빙(結氷)의 아버지'를 쓴 이수익 시인은 영하의 날씨에 한강교를 지나며 꽁꽁 얼어붙은 강 표면에서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품안의 여린 물살을 보호하기 위해 하얗게 얼어붙은채 엎드려 있는 아버지의 잔등이었다.
얼음이 된 강물은 온갖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사랑과 헌신으로 자식을 보듬어주던 아버지의 화신(化身)이었던 것이다. 신경숙의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에 등장하는 아버지도 그랬다. 상처투성이의 인생사에도 오로지 자식들의 건강과 성공을 빌며 묵묵히 견뎌냈던 한 인간으로서의 삶. 우리는 그것을 아버지가 이미 노쇠한 것을 느낀 후에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 부모가 되고서야 아버지의 생을 조금이나마 공감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늙은 아버지는 "살아냈다"고 말한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다"고 한다. 굴곡진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애면글면 자식들을 키워낸 아버지의 마지막 소회였다. 오늘 우리는 그나마 '아버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아버지는 죽었다'고 했다. '아버지 부재의 시대'에 대한 경고였다.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아버지의 추락'이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자녀의 인격 형성에는 모성뿐만 아니라 부성 또한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다. 유대인 가정에는 남녀 차별은 없지만, 성별 분업은 존재한다. 그리고 아버지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부권(父權) 상실이 초래할 사회적 결핍과 부작용을 우려한 삶의 지혜이다. '탈무드'라는 오랜 정신문화 유산을 지닌 민족다운 성찰이다.
우리 사회는 드러내지 않는 부성(父性)처럼 아버지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도 성기다. 아버지에 대한 노래도 드물었다. 1960년대 중반에 가수 오기택이 부른 '아빠의 청춘'(박야월 작사,손목인 작곡)은 신성일 태현실 주연의 영화 주제곡으로도 인기를 누렸다. '아빠의 청춘'은 IMF 경제위기와 1980년대 이후 부권상실의 시대로 한껏 위축된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을 위로하는 노래로 다시 부상하기도 했다.
1989년 영주 출신 가수 이태호가 내놓은 '아버지의 강'이 새삼 주목을 받는 것은 최근의 트로트 열풍 덕분이다. 가요 황제 나훈아가 노랫말을 지은 '아버지의 강'에는 강바람에 스민 억새의 속울음처럼 아버지에 대한 아날로그적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다. 그것은 오늘날 아버지 상실의 시대가 소환한 사부곡(思父曲), 그 소리없는 호곡성일지도 모른다. 새삼 고향마을 강 언덕에 영면하신 아버지가 그립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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