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이 늘면 가격은 하락한다. 이는 상식(常識)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식에 맞지 않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그동안 서울이 크게 확장됐다. 아파트를 많이 공급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은 계속해서 올랐다. 중심부인 강남이 가장 많이 올랐다. 분당이나 일산이 강남을 대체하지 못했다. 앞으로 수도권에 GTX가 운행되면 '실질적으로' 서울이 확대된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다. 대구도 성서, 경산으로 계속 확장했다. 대구 중심부인 범어동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다. 도시가 확장하면 변두리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 중심부가 가장 많이 오른다. 변두리는 중심부를 대체하지 못한다.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의 연봉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명문대(名門大) 학부를 나온 사람이 연봉이 더 높았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명문대 프리미엄(premium)은 있다. 그동안 대학이 많이 생겼다. 대학생이 급증(急增)했다. 그럼에도 명문대 프리미엄은 커졌다. 오죽하면 몇몇 대학을 '하늘'(sky)이라고 하겠는가? 대학이 많아져도 명문대 프리미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가한다. 한계 대학이 명문대를 대체할 수 없다.
예전에는 연예인이 되는 문이 좁았다. 방송국이 배우나 개그맨을 공채(公採)했다. 방송사가 공채하는 연예인은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요즘은 공채가 없다. 어제까지 야구선수였던 사람이 오늘 연예인이 된다. 많은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생기면서 배우가 많아졌다. 수많은 기획사가 아이돌(idol)을 쏟아 낸다. 연예인이 늘면서 보통 연예인들은 생활이 어려워졌다. 반면, 유명 연예인들 몸값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았다. 이들은 '별'(star)이 되었다. 연예인이 늘어날수록 유재석, 신동엽, 블랙핑크의 몸값은 올라간다. 무명 연예인은 스타를 대체하지 못한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이 생기면서 변호사가 많이 늘었다. 로스쿨을 갓 졸업한 변호사 연봉은 높지 않다. 변호사가 많아짐에 따라 평범한 변호사는 소득이 낮아졌다. 전관(前官) 출신 변호사는 수임료(受任料)가 낮아졌을까? 아니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전관 출신 변호사는 수임료가 오른다. 고위(高位) 전관 출신 변호사는 수임료가 크게 오른다. 평범한 변호사가 전관 출신 변호사를 대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전관 출신은 고위 전관 출신을 대체하지 못한다.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는 현상을 역설(paradox)이라고 한다. 앞의 사례들은 동일한 역설이다. 수백 년 전에 리카도(Ricardo)가 이 역설을 풀었다. 핵심어(key word)는 희소성(稀少性)이다. 희소해지면 가격이 오른다. 이는 상식이다. 도시가 확장하면 중심부는 더 희소해진다.
범어동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대구가 확장할수록 좋다. 가만히 있어도 가격이 오르니까. 대학이 많아지면 명문대가 더 희소해진다. 명문대 졸업자는 대학이 많아지는 것을 환영한다. 아이돌이 두 배로 늘면 블랙핑크는 두 배 희소해진다. 블랙핑크 몸값은 세 배, 네 배 오른다. 고위 전관 출신 변호사는 로스쿨 증원에 찬성한다. 자신이 더 희소해지니까.
의대 정원을 2천 명 늘린다고 한다. 국민 76%가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 찬성하는 국민은 이렇게 생각하나? 의사가 늘면 소득이 감소할 것이니,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많아져서 더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도 낙수효과라면 낙수효과다. 간과(看過)한 사실이 있다.
늘어나는 의사는 기존 의사보다 능력이 떨어진다. 불편한 진실이다. 의대 증원으로 늘어나는 의사들은 '내외산소'를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외산소'를 선택하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이 가져다주는 상당한 소득과 지위에 만족한다. 삼성이나 LG에 입사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의대가 증원되면 '내외산소' 의사는 더 희소해진다. '내외산소' 진료를 받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외산소' 의사 몸값이 급등(急騰)한다. 이상은 리카도의 예측이다. 희소성이 교환가치를 결정하고, 교환가치는 가격을 결정한다. 이는 마르크스(Marx)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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